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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조선시대 좌의정 김국광 재실 모원재 와 두마신원재 계룡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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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패여행 2022. 12. 1.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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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조선시대 좌의정 김국광 재실 모원재 와 두마신원재 계룡시 여행

 

호남고속도로지선 251호에서 계룡톨게이트를 나와서 우회전 하자 마자 나오는 왕대리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등록된 김국광선생을 모신 재실인 모원재 김국광묘소 김국광신도비 그리고 김장생 선생의 아홉 번째 아들인 김비선생을 모신 두모신원재 라고 불리는 김비재실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중기 1623(인조 원년)에 건립된 김국광선생(1415~1480)을 모시는 재실은 김국광의 분묘 조성 후에 건립되어 여러 차례 보수를 하여온 한옥 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있어서 문화재청이 19894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8호 모원재로 등록하여 보호하고 있다

 

 

김국광의 본관은 광산. 자는 관경, 호는 서석 으로 대사헌 김약채의 증손으로, 사헌부감찰을 지낸 김철산과 김명리의 딸인 어머니 김씨부인 사이에서 1415(태종 15)에 태어나서 26살인 1441(세종 23)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리의 길에 나섰으며 세조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원종공신 3등에 책훈되었다

 

 

최옥산이 아버지를 살해하였다는 옥사가 14584월 벌어지자 부지승문원사로서 경차관이 되어 최옥산의 무고를 밝혀내는데 힘을 실어서 세조의 신임을 얻어 사헌부장령으로 승차하였고 1460년 동부승지 우부승지 좌부승지 등 승지역을 두루 거치면서 새로운 형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이시애의 난이 14675월에 일어나자 의정부우찬성 겸 병조판서로서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서 적개공신 2등으로 책훈되고 광산군에 훈봉되는 동시에 좌찬성 겸 세자시강원 이사 병조판서 오위도총부도총관 춘추관지사에 올랐고 건주위 정벌에도 공을 세워 군공 3등에 책훈되었다.

 

 

세조가 사망하고 예종이 즉위하자 신숙주 등과 함께 원상이 되어 국정을 맡아서 좌찬성으로서 국정에 참여하였고 14695월 충청도와 전라도의 문폐사로 내려가 여러 가지 폐정 시정에 노력하였고 8월에는 우의정으로 승차하였고 1470(성종 1) 4월 좌의정으로 승차하고 5월에는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김국광의 제사를 지내는 모원재 뒤쪽으로 좌의정김공묘역 이라는 돌로 만든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신구 2기의 김국공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구신도비는 대리석으로 이수를 갖추고 있고 좌대는 사각형인데 화강석으로 조성되었고 비문은 전면에만 각입되어 있는데 서거정이 찬하고, 임사홍이 서병전 하였다.

 

 

신비는 1726년에 구비가 쇠락하여 다시 세웠는데 신비의 석질도 대리석으로 팔작지붕 가담석을 얹고 사각좌대를 갖추고 있으며 비신의 크기는 높이가 225cm, 폭이 100cm, 두께가 23cm으로 구비문을 그대로 옮겼으니 찬자는 서거정이요 서자는 구대손인 진상이 썼는데 자경이 2.5cm의 계서이고 호 액은 10대손 김상택의 필로 자경이 10cm의 크기로 조성되었다

 

 

김국광재실 모원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8

충청남도 두마면 왕대26-10

 

 

모원재에서 신원재로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198211월에 보호수를 지정된 느릅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잘 썩지 않고 물에 잘 견디어 농기구의 자루나 가구를 만들거나 건축재로 쓰이는 느티나무가 나무높이 21m 나무둘레 5m 수령 550년으로 마을의 역사를 지켜보면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서 있다

 

 

모원재에서 마을 길을 따라 동쪽으로 400m를 가면 두마신원재라고 불리는 사계 김장생의 아홉 번째 아들인 김비를 제사 지내기 위해 자리잡은 재실이 1632년에 건립되어 문화재청에서 20021103동의 가옥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9호 두마신원재로 지정하여 보호 하고 있다

 

 

두마신원재는 신독재 김집과 형제들이 조부인 김계휘와 부친인 김장생의 저서들을 정리하고 집필하기 위해 1632년에 건립하였는데 신독재 사후에 막내동생인 김비가 황강행장 및 사계와 신독재 전서를 집필하던으로 김비는 조선 효종 21651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장수 이인 평구 찰방을 역임하였다

 

 

김비를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두마신원재 건물은 전면에 '신원재' 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정면 4칸과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모양이며 우측은 온돌방, 좌측은 대청마루 구조로 조성되었고 조선 중기의 전통 한식 목조형태이며,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으나 지금까지도 한옥 재실로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김비 재실 두마신원재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9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