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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잉태시킨 범일국사 찾아나섰다가 산길을 헤매고 나서~~

여행 이야기

by 마패여행 2008. 7. 18.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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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에서 강릉 단오제에 대해 여러가지것을 준비하면서 강릉의 가치를 높이고

범일국사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고 예전에는 그냥 스쳐 지나간

굴산사지를 제대로 한번 둘러보려고 굴산사지를 찾아갔다.

 강원도 강릉 학산마을에 가면 예수탄생설화와 비슷한 범일국사 탄생설화가 전해져 오는

굴산사라는 옛절터가 나온다.

굴산사지가 강릉지역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아보려면 강릉 단오제를 살펴보면

바로 알수가 있다

매년 남대천변에서 성대하게 펼쳐지는 강릉단오제에서 모시는 주신이 대관령 산신당에

모셔진 분으로 바로 범일국사인것이다.

그렇다면 강릉단오제 행사를 하기전에 이곳을 먼저 찾아야 하는것은 물론이고 이곳을 찾는 사람

들이 범일국사의 유적지를 제대로 찾아갈게 하는 것이 강릉시의 중요한 일중의 하나일것이다.

그렇게 알고 떠난 굴산사지로의 답사여행은 엉뚱한 안내표지로 인하여 산속을 헤매고 도는

땀 범벅의 여행이 되고 말았다.

 

강릉시 학산마을에 도착하여 굴산사터와 당간지주를 돌아보고 범일국사 부도탑과 학바위를 답사

하기 위하여 학산마을에 들어서니 마을앞 송림 앞에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보여 반가웠다

표지판을 보니 학바위는 마을안으로 직진해서 500m를 가면 나온다고 해서 차를 몰고 아무리 가도

그다음 표지판이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1km정도 가니 커피숍 안내판이 나왔을 뿐이었다

불행중 다행인지 강릉에서 유명한 수제 커피를 만들어 내는 커피숍이어서 여행계획에 들어 있었으니

헛걸음은 아니었지만 황당할 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범일국사의 탄생설화가 전해져오는 우물을 답사하고 표지판이 알려

주는 대로 마을뒤 언덕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또 황당한 상황을 당하게 되었다.

언덕길 바로 아래에 문화재를 안내하는 설명판과 길을 안내하는 표지가 세워져 있었는데

하나는 직진을 하라고 알려주던 학바위에 대한 설명판과 부도탑 길안내 표지판이었다.

그나마 설명문 첫줄에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범일국사를 단순히 '범일'이라고 칭하는 하대

하는 듯한 글이 적어져 있었다...

 

그나마 학바위를 알려주는 설명문구는 세워져 있으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학바위

 비스무리한 바위도 볼수가 없어서 일단 부도탑을 답사하기위해 길안내판에 나온대로

 200m를 산언덕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200m를 가도 부도탑 비슷한것을 보이지 않고 갑자기 밤나무숲이 나오고 길이

 끊기는게 아닌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밤나무숲에 들어가보니 부도탑이 아닌 개인 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는게 아닌가!!

 

황당한 마음으로 다시 길을 내려와 길안내 표지판 있는 지점에 거의 다다르니 버려진 시골집

마당 깊숙한 곳에 부도탑 비슷한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집은 200m를 알려주는 표지판에서  불과 50여m  아무리 길게 잡아도 부도탑까지 70걸음도

안되는 지점이다.

집앞을 지나 부보탑이 있는곳으로 들어가보니 다찢어져 가는 설명문에 범일국사 부도탑을

 알리는 문구가 적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다쓸어져가는 황량한 마당 한편에 그것도 밭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범일국사부도탑비!

그리고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범일국사 부도탑 바루 뒤에는 개인묘가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우리나라 보물의 관리실태고 관광상품으로 개발된 강릉단오제의 주신에 대한

관리실태라고 생각하니 뭐라고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황당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길안내 표지판앞으로 돌아와 학바위 설명문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처음 표지판에 학바위까지의 거리가 500m라고 적혀 있었고

이곳 표지판까지의 거리가 대략 2~300m 정도가 되니 설명문 옆으로 만들어진 나무계단

으로 한 200m 정도 올라가보면 학바위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무작정 올라가보았다

그런데 그나마 시늉으로 만들어져 있던 나무계단도 끝나버리고 산속으로 좁게 난 길을

무작정 올라갈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2~300m를 가다보니 소나무숲 사이로 바위 무더기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 이곳이 학바위인가 보다 하고 사방을 아무리 둘러봐도 안내판도 설명문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나마 그 바위무더기 뒤로는 길이 끊어져 있는거처럼 보여서 그곳을 사진기에

담아두고 허탈하게 내려올수 밖에 없었다.

 

답사여행을 다녀온지 3주가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때의 황당한 상황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여름 무더위 속에 다른분들도 땀 뻘뻘 흘리며 헤매이제 않을까 걱정이 들어

답사내용을 정리해서 올린다.

강릉시 관계자분들이 바뻐서 하청업체를 시켜서 표지판 작업을 했더라도

일단 현장 확인 작업 한번 정도는 하시고 문구도 다시 한번 확인해주기를 바랄뿐이다.

 

 

 

---- [ 굴산사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 ]-------------------------------------------------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있는 사적 제448호 굴산사지는 선종의 큰 일맥으로 선종9산의 한자리

를 차지한 사굴산파의 본사 역활을 했었던 곳이다. 

원주를 지나 대관령을 넘어서는 강릉지역일원에서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큰사찰이 있었던

 자리지만  지금은 논과 밭 고추밭으로 변해버려 간간히 보이는 석조 유물들이  보이지 않는

다면 평범한 농촌풍경이 있는 한적한 마을로 보일뿐이다.


범일국사의 탄생설화가 전해지는 학산마을에 있는 굴산사는 신라후기에 범일(梵日)

 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범일국사는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굴산사에서 40년을 보내는 동안 신라의

 경문왕(景文王), 헌강왕(憲康王), 정강왕(定康王) 3대 임금으로부터 국사(國師)가 되어

 주기를 권유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오로지 불법(佛法)을 공부하고 전파시키는데 힘썼다.

굴산사가 언제 창건되고 폐사(廢寺)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나,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던 절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 절의 정확한 위치와 규모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주변에 위치한 유적과 유물을 살펴볼 때, 그 범위가 매우 넓었던 것으로 보인다.

옛터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당간지주(幢竿支柱)와 범일스님의 사리탑(舍利塔)
이라 전해

지는 부도탑(浮屠塔), 돌부처상 3구 및 많은 기와 조각들이 남아 있다.

당간지주의 크기를 볼때 그옛날 굴산사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뿐이고

최근에 지어진 굴산사가 옛 굴산사의 자취만을 알려주고 있을뿐이다


또한 부근에는 범일스님이 태어났을 때의 전설이 깃든 석천(石泉)과 학바위가 있다. 
학바위는 마을의 바로 뒤쪽 산기슭에 있는데, 여러 개의 바위 중에 넓적한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이 범일국사를 버렸던 학바위라고 마을 사람들은 전하고 있다.

 학바위로 올라가는 언덕 아래에서 오른쪽 길로 50여m 올라가면 오른쪽 편에 다쓸어져가는 

시골집이 나오는데 그집 앞마당 뒷편에 밭 한가운데에 부도(浮屠)가 하나 있는데 범일국사

부도탑으로  알려져 있다.

 

범일국사의 탄생설화를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에 학산 마을에 살았던 한 처녀가 하루는

석천이란 우물에 물을 길러 갔다.

목이 말라 바가지로  물을 펐더니 그 속에 해가 떠 있었다.

해가 뜬 물을 버리고 다시 물을 푸자 또 다시 그 속에 해가 있었다.

할 수 없이 그 물을 마셨더니 그때부터 태기가 있어서 13개월만에 낳은 아이가 바로 범일국사였다. 

 양가집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마을 전체가 시끄러울 수밖에 없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범일국사의 어머니는 아이를 보자기에 싸서 뒷산의 학바위에 버렸다.

 그러나 모정을 이기지 못하여 며칠 뒤 그 바위에 찾아가보니 짐승에게 물려갔거나 변고를

당했을거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학이 주는 붉은 열매를 먹으며 살아 있었다.

이를 본 어머니는 아이를 버리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로 받아들이고 다시 데려다 길렀는데,

여덟 살에 이미 글을 읽을 정도로 총명하였으며, 15세가 되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범일국사는 중국에 유학하여 득도한 후 신라로 돌아와서 자신이 태어난 마을앞에 굴산사를

 세우고 신라말의 교종을 밀어내고 불교의 중심역활을 했던 선종의 9산선문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사굴산파를 창립하였다.

범일국사는 죽은 후에는 대관령으로 올라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대관령에 있는

 산신당에 범일국사의 영정이 걸려 있어 그 신령스러움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매월 강릉에 열리는 단오절에 주신으로 받들어지는 신령이 바로 범일국사이다.

  범일국사의 어머니가 물을 마시고 아이를 가졌다는 석천은 마을 한 가운데에 있다.

예전의 모습은 없고 다시 복원은 했으나 웬지 엉성하다.

그래도 범일국사의  탄생설화를 잉태한 신성성을 간직한 우물이다.  

 

범일국사의 탄생설화를 보고 알수 있는 것은 고구려 지역이었던 강릉지역에 후기신라시대에도

 태양에 산다는 삼족오사상인 태양숭배와 해모수와 물의 정령에 관련된 물에 대한 신앙이 민간에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알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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