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의 혼과 얼이 담겨있는 우리문화재가 철없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낙서로 인한 훼손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국가의 지지를 받던 시절 전국 유명 풍광지에 구곡의 이름을 명명하고 바위위에 글을 파넣던
습성이 이어져 내려온 유전자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에 사랑마크를 비롯한 자기이름 파넣기로
우리문화재가 몸살을 않고 있는것이다.
전북 김제에는 미륵성지로 유명한 천년대찰 금산사가 자리 잡고 있다.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고 금산사의 널리 알려지게 된것은 통일신라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 때문이다.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미륵신앙의 성지로 세웠다. 이 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보제루를 지나 가람의 중심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국보 제62호인 웅장한 규모의 미륵전이 보인다.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미륵전은 신라 경덕왕 21년(762)부터 혜공왕 2년(766) 사이에 진표율사가 가람을 중창하면서 미륵보살에게 계를
받았던 체험 그대로를 가람에 적용하여 세웠다. 안에는 미륵장륙상을 본존으로 모셨으며 남쪽 벽에 미륵과 지장
보살에게서 계를 받는 광경을 벽화로 조성하였다.
본존불 양 옆의 협시보살은 왼쪽이 법화림(法花林) 보살이고, 오른쪽이 대묘상(大妙相) 보살이다. 미륵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인조 13년(1635)에 수문대사가 재건하였다.
미륵전은 용화전, 산호전(山呼殿), 장륙전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을 지녔다. 지금도 특이하게 1층에는 「대자보전
(大慈寶殿)」, 2층에는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에는 「미륵전(彌勒殿)」등의 각기 다른 편액이 걸려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가 미륵불의 세계를 나타낸다.
이러한 다층의 사찰 건축으로서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한국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미륵전의 내벽과 외벽에는 사이 사이에 수많은 벽화가 그려져 있다. 보살과 신장 그리고 수도하는 모습 등 다양한
벽화는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조상의 훌륭한 유산에 수많은 몰지각한 사람들이 낙서를 해놓아서 이곳을 찾는사람들의 눈살을 찌
푸리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얼마나 낙서가 심한지 외벽벽화 아래에는 “낙서를 금합니다. 문화재가 아파요”라는 표지판까지 세워놓았을까
싶으니 못난 후손들을 둔 조상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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