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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의 비원이 서린 가야산 남연군묘와 보덕사 충남 예산 여행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2. 3. 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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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에서 덕산온천 방향으로 서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우뚝 서있는 해발 677m 의 가야산은 신라 시대에는 가야산사를 짓고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 에는 덕산현감이 봄, 가을로 제를 올렸던 신성한 산 이었다

 

 

통일신라시대 가야사를 세운뒤 가야산이라고 불리던 이산이 역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가야사가 풍수지리설에서 두명의 왕을 배출한다는 "이대 천자지지" 라고 하여 대원군이 이곳에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모시고 조선 고종의 등극 하면서 이다

 

 

9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을 정도로 대형 사찰 이었던 가야사는 풍수지리가인 정만인의 한마디로 흥선대원군이 김시 문중의 외척세력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기 위해 가야사를 불지르게 되면서 통일신라시대부터 전해오던 천년 가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고종이 등극하면서 김씨 일문을 몰아내고 승승장구하던 대원군이었지만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1866(고종 3)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다가 실패하자 화풀이겸 보물을 노리고 남연군의 무덤을 도굴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사단이 일어났고 대원군은 이를 계기로 쇄국정책의 비석을 전국에 세우게 되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의 결과로 조선이 일제에 의해 폐망하면서 남연군묘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졌으나 왕실묘라 하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관리를 해오다가 19891229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는데 묘 앞에 2조의 석양 조물이 자리잡고 2기의 석주가 묘지의 좌우에 세워져 있고 묘의 전방에는 이대천자지지라 명문이 새겨진 석등이 자리잡고 있다.

 

 

가야산 가야사는 남연군의 묘가 들어서면서 폐찰이 되었는데 19981224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0호 예산가야사지로 지정되면서 남연군묘 앞에 논밭으로 일구던 가야사지는 문화재 발굴조사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총 3차례 진행되었다.

 

 

남연군묘를 제외하고 예산 가야사지 발굴조사 결과 중정을 중심으로 8동의 건물지가 확인되었고 석조불상 8, 청동불두 1, 가량갑() 명문기와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가야사지에 대한 건물배치 및 사명을 확인하게 되었고 남연군묘의 제각시설의 발굴은 가야사지를 일부 파괴하고 조성된 것이 확인되었다.

 

 

예산 가야사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50

남연군묘

충청남도 기념물 제80

충남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산 5-29

 

 

 

흥선대원군은 가야사를 불태운 죄책감을 씻고 고종이 왕위에 오른 것을 보은하기 위하여 1871년인 고종 8년에 불살라버린 가야사의 동쪽 산중턱 서운산 남쪽기슭에 아미타불을 모시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새절을 창건하고 부처님에게 속죄한다는 의미를 담아 보덕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된 보덕사극락전은 다른사찰에서 대웅전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건축물로 앞면 3·옆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기둥위에 보가 얹혀진 주심포양식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보덕사 앞마당에 자리잡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된 예산읍삼층석탑은 가야사지에 있었던 석탑으로 전해지는데 일제강점기인 1914년 일본인이 몰래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반출한것을 보덕사 주지스님이었던 관응스님이 찾아와서 예산군에서 보관하다가 200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보덕사 삼충석탑과 함께 가야사지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보덕사 앞마당에 자리잡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3호로 지정된 보덕사석등은 불을 밝히는 팔각형의 화사석만 남아 있는데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화사석을 제외한 모든 부재를 새로 만들었다.

 

 

서원산 보덕사

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로 400-74

전화: 041-337-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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