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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고흥] 팔영산 능가사 대웅전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8. 6. 12.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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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은 팔영산의 각봉우리 고유이름(1봉/유영봉, 2봉/성주봉, 3봉/생황봉, 4봉/사자봉, 5봉/오로봉, 6봉/두류봉, 7봉/칠성봉, 8봉/적취봉)을 표지석에 새겨 등산객을 반기고 있으며 대표적인 주변 관광지로는 팔영산 암봉의 동쪽 깊은 계곡에 휴양림이 있고 신라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4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던 능가사가 있다.


 

전남 고흥군 점암면 성기리 평촌마을 369번지에 위치한 능가사는 팔영산 북서쪽 자락 등산로 입구에 자리잡고 있어 팔영산과 어울어진 전경이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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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가사(보현사) 사적비 비문에 따르면 능가사는 원래 보현사로 창건되었다고 하나 지리지류에는 별개의 사찰로 각각 기록되고 있다. 초창 시기를 신라 눌지왕 원년(416) 아도화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 시기 유물이 확인되지 않으며 고구려 스님인 아도화상의 생존 연대와도 차이가 있어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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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절 경내에 전해지는 능가사 사적비 비문에 의하면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된 절은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하여 소실 폐사가 되어 버렸다가 1644년(인조 22)에 벽천정현 대사가 중창하였다 한다. 정현대사가 하안거 중 꿈을 꾸게 되었는데 한 신승이 나타나 "장부로 태어나 부처가 되기는 어려우니 역시 마땅히 대공 덕주가 되어 종풍을 弘布하겠다."는 말을 전하자 꿈에서 깨어난 정현대사가 팔영산을 살피던 중 산 남쪽에서 보현사 절터를 발견하여 전각과 요사체, 불상, 탱화, 종각 등 불사를 일으켜 중창주가 되어 능가사로 바꾸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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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천대사에 의해 중창된 당우가 당시 모두 20여 동이 되었고 십여개의 암자를 거느렸다고 하니 절의 규모가 상당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현존 건물은 대웅전(58.3평)과 응진당(19.7평), 사천왕문(22.3평), 원음료(요사채;23.2평) 등이 있으며 돌담으로 둘러진 寺域 면적은 3,217평이다. 대웅전과 응진당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건축사적으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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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물 제1307호인 능가사 대웅전(大雄殿)은 18세기  중건된 정면 5칸, 측면 3칸, 57.58평의 건물로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다포계의 일반적 수법을 따랐지만 정면 기둥머리의 안초공 수법과 건물 내·외부에 연봉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기법은 보물로 지정된 영광의 불갑사대웅전, 부안의 개암사대웅전과 그 맥을 같이 하며, 포벽 수장재에 도드라지게 새긴 첨차(影공)는 사찰건물에서 보기 드문 예에 속하는 등 조선 중·후기 호남지역 사찰건축의 일면을 보여주는 건물로 학술적·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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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차는 교두형이며 쇠서는 앙성형으로 뾰족하게 처리하였다. 천장은 종량 위로만 우물천장을 가설하였고,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처마는 전후면 겹처마이다. 창호는 어칸은 四分閤 빗살문, 협칸은 쌍여닫이, 퇴칸은 외영닫이문으로 처리하였다. 뒷면에도 쌍여닫이문을 3곳에 뒤었다.

대웅전에는 높직한 수미단을 마련하여 봉안하였는데 재료는 목조이며 개금을 하였다. 삼존불 좌우로는 보살입상이 각 1구씩 배치되어 있다. 즉 삼존불은 관음·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에 두고 과거 연등불과 미래 미륵불이 좌우로 앉은 배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후불탱황 3폭, 칠성탱화·제석천룡탱화·산신탱화 등이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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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557호 고흥능가사강희37년명동종(高興 楞伽寺 康熙 三十七年銘銅鍾) 은 현존하는 김애립(金愛立)의 작품 가운데 가장 뒤늦은 시기인 1698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종신의 전체적인 외형은 상부가 좁고 아래로 가면서 점차 넓게 벌어져 여수 흥국사 동종과 유사하며, 용뉴는 쌍룡(雙龍)으로 구성되었다. 연곽대와 연곽대 사이에는 4구의 보살입상이 유려한 모습으로 부조되었고, 종신 한쪽에는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전패(殿牌)가 마련되었다.

이 종은 용뉴의 웅건한 표현과 단정한 보살입상, 세부 문양의 정교함 등 김애립 범종의 완숙한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17세기를 대표하는 범종으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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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참조]

http://www.goheung.go.kr/tour/

http://www.foreston.go.kr/

http://korean.visitkorea.or.kr/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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