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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에도 등장하는 제주도 애월읍 애월진성과 애월연대 제주여행

제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6. 11.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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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순력도에도 등장하는 제주도 애월읍 애월진성과 애월연대 제주여행

제주도 역사연구에 귀중한 자료인 탐라순력도 “애월조점” 편에 1702년(숙종 28) 11월 14일, 애월진의 군사와 말을 점검하는 모습을 볼수 있을 정도로 제주도에서 중요한 지역중의 한곳이 제주목(제주시) 애월진성이었다.

애월진성은 1271년(원종12년) 삼별초의 난떼 목성이 축조되었으며 1581년(선조14년) 김태정 목사때 포구로 옯겨 오늘날과 같은 돌로 쌓아 축조한 성이다.

  

탐라순력도는 1702년(숙종28)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제주관내 순시를 비롯해 한 해 동안 거행했던 여러 행사 장면을 제주목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40폭의 채색도로 그리게 한 다음 매 화폭의 하단에 간결한 설명을 적고, ‘호연금서’라는 이름의 그림 한 폭을 곁들여 꾸며진 총 41폭의 화첩이다.

그 진본을 이형상의 후손들이 간직해오다가 1998년 12월부터 제주시가 소장하고 있다. 탐라순력도는 보물 제652-6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애월진성 자리에는 애월초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그흔적을 찾아보기 힘들고 학교 담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애월진성의 성벽흔적만이 남아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애월진은 남문과 서문이 있는 원형의 성이다. 성벽 위에는 여장이 설치되어 있고, 성문 앞에는 옹성이 있으며, 회곽도를 오르기 위한 돌계단이 성문 가까이에 축조되어 있다.

 

진성의 성문은 2개소에 위치할 경우 서로 마주해 동문과 서문이 설치되는 것이 보편적인데, 애월진의 경우는 성문이 서로 이웃하고 있다.

 

남문은 주변의 취락과 연결하여 통행하기에 유리하고 서문은 문 밖에 용천수가 있어서 식수를 구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포구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북성 가까이에 남문을 향해 객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객사 앞 좌측에는 익랑과 진사로 보이는 건물이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를 형성하면서 배치되어 있다. 동성 가까이에는 군기고가 자리 잡고 있다.

 

탐라순력도에 애월진 내에는 말을 점검하기 위한 사장 및 원장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 보일정도로 제주도하면 말을 떼어놓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국자적 차원에서 말을 기르던 지역이었다.

 

그림 아래에 지방관 제주판관 조방장 남해거, 성정군 245명, 목자와 보인이 181명, 말 1,040필이라고 적고 있다.

애월진은 고내봉수와 애월·남두 연대를 관장했다.

 

 

애월항에서 애월리에서 한담해안으로 넘어가는 돌담길가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23-17호로 지정된 애월연대가 자리잡고 있다.

 

연대는 오늘날과 같이 통신시설이 발달하기 이전 적의 침입과 위급한일이 있을때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방호소나 수전소 등으로 빠르게 연락하기 위한 통신망의 하나였다.

 

제주도에서는 오름의 봉우리에 있는 봉수와 달리 연대는 대부분 해안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연대에서는 해안으로 접근하는 적국의 배를 자세히 관찰하는 동시에 필요시에는 적군과 전투를 하기위한 요새적인 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제주도에는 38개소의 연대가 있었는데 낮에는 연리고 밤에는 불빛으로 상호 연락을 취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일경우에는 연대를 지키던 군인이 직접 달려가 급한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연대는 군사적인 중요한 지점중의 하나로 전망이 좋은 자리에 잡고 있어 오늘날에는 자연풍광을 조망하기 좋은 자리중의 하나로 여행자들이 연대에 들려 그곳의 풍광을 한눈에 바라 볼수 있는 명소가 되고 있다.   

 

애월항에 자리잡고 있는 도대불(엣날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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