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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공주 정안면 여행 조선말 개화사상가 고균 김옥균선생유허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2. 1. 10.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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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논산간 고속도로 공주 정안톨게이트를 나와서 공주정안농공단지 남쪽으로 찾아가면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번지 야산자락에 잔디가 깔려 있는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선생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김옥균선생유허가 나온다

 

 

김옥균선생유허는 김옥균 선생이 6세까지 살던 생가지, 김옥균 생애비가 유허지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데 원래는 김옥균 생가를 비롯하여 89호의 민가가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화재로 모두 없어지고 터전만 남아서 전하고 있다

 

 

김옥균선생유허는 1976126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로 김옥균선생유허 지정된 공간으로 3일천하로 끝난 희대의 풍운아의 태어난곳에 생가지도 복원이 되어 있지 않아서 실패한 혁신의 의미를 보여주는 듯 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든다

 

김옥균(18511894)은 조선시대 말엽 임오군란 이후 청국이 대원군을 납치하여 보정부에 유폐하고 국권을 좌우하는 것을 보고 청국의 조선에 대한 속방화정책과 개화 정책에 대한 탄압에 김옥균 박영효 윤웅렬 서재필 등 9명이 주축이 된 개화당이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외치며 개화사상을 주장하면서 고종 211884124(음력 1017) 홍영식이 총판으로 있던 우정국 낙성식 축하연을 계기로 고종과 명성왕후를 경우궁으로 옮기고 갑신정변을 일으켜 신정부를 선포하고 125일 각국 외교관들을 초치하여 신정부의 수립과 개혁정치를 하게 될 개혁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의 연통을 받은 명성왕후가 청덕궁으로 회군을 강력히 요청하여서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어쩔수 없이 창덕궁으로 회궁하게 되었고 126일 혁신정강 14개조를 발표하였으나 청군 1,500명의 공격과 일본의 배신으로 3일 만에 실패하는 정변이 되었다

 

 

갑신정변 실패시 일본으로 망명한 김옥균은 1894년에는 한··일 삼국의 제휴라는 삼화주의를 주장하면서 청나라의 실력자 리홍장을 만나러 상해를 방문하던 중 수구파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고 시신은 한국으로 보내져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는 수모를 당했다

 

 

갑오개혁(1894)으로 개화당 내각이 조직된 후에 총리 김홍집의 상소로 반역죄가 사면 복권 되었고 1910년에는 규장각 대제학으로 추증되었고 김옥균의 시신은 일본 동경의 청산외인무덤에 묻혔으나 1914년 아산군수였던 그의 양자 김영진이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로 옮겨와 부인 유씨와 합장하였다.

 

 

김옥균 유허 충청남도 기념물 제13호 비석옆에는 공주시에서 20212월의 공주역사인물로 선정하였다는 제목과 함께 김옥균은 정안면 광정리 감나무골에서 태어난 조선의 개혁을 꿈꾼 개화사상가로 본관은 안동 자는 백온 호는 고균 고우 이다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3

김옥균선생유허

충남 공주시 정안면 광정리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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