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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최양업 신부 선종지 진안리성지 문경 천주교성지 순례길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2. 8. 17.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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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가는 길목 문경힐링휴양촌이 자리잡은 맞은편 옛문경 주막자리에 조성된 문경 진안리성지는 세례명 토마스 최양업신부가 상해에서 신부 서임을 받고 한국으로 들어와 사목 활동을 하다가 주막에서 과로한데다 장티푸스에 걸려서 1861615일에 선종을 맞이 한 장소이다

 

 

문경읍에서 문경새재로 가는 길목 문경주막이 있던 진안리 성지 맞은편에는 범이네힐링체험장 라오미자연밥상 등 먹거리 촌과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 할수 있는 창문을 열면 살랑이는 바람결에 기분 좋은 자연이 살며시 다가오는 힐링휴양촌이 자리잡고 있어서 현대적 주막촌을 재현하고 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213, 충청남도 청양 새터교우촌 에서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순교자 이성례 마리아의 장남으로 태어나서 박해를 피해 부친을 따라 경기도 부평을 거쳐 안양에 있는 수리산으로 이주하였다가 프랑스 출신의 성 모방 베드로 신부를 만나 한국의 첫 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은 183626일 서울의 모방 신부 댁에서 라틴어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고 314일에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711일에 김대건 안드레아가 신학생으로 합류하여 1836123일 성서에 손을 얹고 순명을 서약하고 마카오 유학길을 떠난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다

 

 

마카오에서의 유학 생활을 하던 중 18424월에 한국과의 통상 조약을 원하는 프랑스 함대에서 통역사로 발탁되어 최양업과 김대건은 각각 다른 프랑스 함대에 승선 하였다가 프랑스 함대가 남경에 머물게 되면서 요동 소팔가지에서 조선 대목구 부주교인 페레올(Ferreol) 요한 주교로부터 계속 수업을 받았다

 

 

최양업은 김대건과 함께 18441210일경 페레올 주교로부터 부제품을 받게 되었고 김대건 부제는 사제 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성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신부와 함께 한국에 입국 하였는데 그뒤 밀사로부터 김대건신부가 1846년 천주교박해로 순교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 천주교회 밀사들의 만류로 귀국을 포기한 최양업 부제는 극동 대표부가 이전해 있던 홍콩에 도착한 뒤 한국 순교자들의 행적을 라틴어로 번역하였고 상해로 거처를 옮긴 최양업 부제는 1849415일 서가회 성당에서 마레스카(Maresca) 주교로부터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품을 받은 최양업 신부는 그 해 5월에 상해를 출발하여 중국 요동 지방으로 가서 성 베르뇌(Berneux) 시메온 신부 아래서 사목 활동을 시작하였고 123일 한국 천주교회의 밀사들을 만나 한국으로 귀국하여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만나서 각처에 숨어 있는 신자들을 순방하기 시작하였다

 

 

최양업신부는 1850년 초부터 6개월 동안 5개 도, 5천 여 리를 걸어다니며 신자 3,815명을 방문한후 진천 배티를 사목중심지로 삼아서 사목 활동을 시작 한 이후 116개월 여 동안 꾸준히 사목 활동을 하였고 휴식기간을 이용하여 한문 교리서 및 기도서를 한글로 번역하였다

 

 

최양업신부는 중국에 있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국 입국을 도왔으며, 한국 신도들중에서 선발된 신학생들을 말레이 반도에 있는 페낭(Penang) 신학교로 보냈고,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을 수집하였으며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전국을 돌면서 순방을 통해 선교 활동을 펼쳤다

 

 

최양업신부는 1860년 경신박해 때 몇 명의 신자들과 함께 경상남도 울산시 울주군 죽림교우촌에 갇히게 되었고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마지막 서한을 보내고 갇혀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사목 활동을 계속 이어가면서 서울로 보고를 하러 가던중 과로와 장티푸스로 문경진안리성지에서 선종 하였다

 

 

최양업신부의 선종 소식을 접한 베르뇌 주교는 파리 외방전교회의 신학교 교장인 알브랑(Albrand) 신부에게 최 토마스 신부는 신심, 영혼의 구원을 위한 불과 같은 열심, 그리고 무한히 귀중한 일로는 훌륭한 분별력으로 우리에게 그렇게도 귀중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라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푸르티에(Pourthie) 신부는 최양업신부 선종 전에 그장소에 도착하였고 최양업신부에게 마지막 성사를 하려고 하다가 죽어가는 그의 입에서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들을수 있었고 최 신부는 12년간 거룩한 사제의 모든 본분을 지극히 정확하게 지킴으로써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김대건신부에 이은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 신부는 선종 후 5개월이 지나서 베르뇌 주교의 주례로 성대하게 장례가 치루어졌고 최신부의 시신은 배론 신학교 뒷산에 안장되었으며 194212월에 제천의 신자들이 무덤을 단장하고 그앞에 묘비를 세워서 그의 선종을 기렸다

 

 

진안리성지 안에는 문경성지순례길을 순례 할수 있는 한실교우촌 우정의바위 마원성지 진안리성지 문경관아 당포공소 홍베로니카치명터 여우목성지 여우목교우촌 등으로 이어지는 지도가 붙어 있고 천주교 순례지 주소가 있어서 걸어서 갈수고 있고 네비게이션을 찍고 자동차로도 찾아 볼수가 있다

 

 

최양업신부 선종지

진안리성지

경북 문경시 문경읍 진안리 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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