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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무공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발포리와 다도해해상국립공원 발포해수욕장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8. 6. 14.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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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포해수욕장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중에서 유일하게 섬이 아닌 육지에 자리를 잡고 남해바다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해수욕장으로 고흥읍에서 동남쪽으로 20km거리 도화면 마복산 자락아래

자리잡고 있다.

   

여수-고흥 연륙 연도교 11개의 다리로 이어지게 될 77번국도의 고흥 남쪽해안도로구간 중심부분에

 위치한 발포해수욕장은 북으로는 마복산 기암절경 과 남으로는 활개바위를 비롯한 다도해해상국립

공원의 푸른절경 그리고 동으로는 나로도 해상경관과 서로는 천등산 철쭉과 산길드라이브 코스가

 있어 고흥 관광지의 중심축의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흥군에서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발포리 일원에 역사테마파크(충무사 일원 : 임진왜란 체험관,

 굴강복원, 편익시설)와 휴양 테마파크 (발포해수욕장 : 해수풀장, 스파체험장, 야영장) 등을 조성할

 예정이다.

 발포해수욕장의 잔자갈이 섞여 있는 금빛 모래 해변은 폭이 100m, 길이 약 1km에 걸쳐 있으며

 백사장 중간 부분에 바닷가쪽으로 돌출된 암벽이 있어 동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져 있는 것 같이

 보이는데 백사장 안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서쪽부분으로 들어가면 고흥 유일의 호텔인 빅토리아

 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발포해수욕장은 모래는 신경통, 부인병 등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서 이곳을 찾는 피서객들이 모래

찜질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에 관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옛날 젊은 남녀가 정렬적인 사랑이 넘쳐 뜻하지 않은 열병을 얻어 신음하게 됐다. 두 남녀는 피부가

 부어 터지고 종기 등이 나자 견딜 수 없어 발포리 동북쪽 모래밭에  모래를 파서 웅덩이를 만들고

 그 곳에 알몸을  묻고 오동나무 장작불을 피워 불에 달군 모래를 이불삼고 15일간을 지내자 피부가

 깨끗해지면서 종기가 씻은 듯이 다 나았다고 한다. 그이후로 이곳을 탕사장이라 이름하고 여름이

오면 이곳을 찾는 탕사 인파가 줄을 잇는다고 한다.


발포해수욕장 인근인 발포리 마을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580년(36세) 발포 만호로 첫부임하여

18개월간 재임했던 발포만호성(지방기념물27호) 유적지와 충무사(사당), 백로 및 왜가리 도래지

(기념물 제33호), 도화헌 미술관 등이 있으면 인근 사덕리 덕흥마을은 옛날 선소로서 거북선을 건조

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

충무사는 이순신 장군(1545년 ∼1598년, 본관 덕수, 자는 여해)을 기리는 사당이다. 이 사당은

선조13년(1580) 7월 이순신 장군이 36세 때 이 곳 발포만호로 부임하여 선조 15년(1582) 1월 모함을

 받아 파면되기까지 18개월간 재임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고 매년 충무공 탄신일인 4월

 28일에 충무공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지방기념물 33호인 왜가리 도래지에는 임진왜란과 관련된 장렬한 이야기와 애절한 이야기 그리고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1592년(선조 25년 4월 14일) 임진왜란이 터지고 황정록이 발포만호로 도임됐으며 부임 초부터

이순신 막하에서 많은 해전에 참전 전공을 세웠으나 1597년(정유년) 정유재란 칠천량해전에서 적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했다.
이 비보를 듣고 황정록 발포만호의 부인 송간의 손녀 여산 송씨는 "남편이 왜놈들 총탄에 맞고

죽음을 당하였는데 장차 우리도 더러운 왜적의 손에 죽음을 당할 것이거늘 어찌 우리만 살아서

무엇 하겠느냐?" 하며 갓난아이를 등에 업고 큰 아이들은 양팔에 끼고 마을 동쪽에 있는 우암

 절벽에서 깊은 바다로 몸을 던져 남편의 뒤를 따라 순절하고 말았다.

이이야기는 조선환여지승람과 난중일기 등에도 전해져 오고 있으며 동영산 상봉 우암 절벽에

오르면 후세 사람들이 그녀의 슬픔이 담긴 사연을 전하기 위해 세운 이끼 낀 비각과 먼지를 이고

 우뚝 선 비석에 구국의 길에 나선 남편의 뒤를 따른 열녀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져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그 곳을 열녀절벽이라 일컬어 갸륵한 그 뜻을 기리고 있다.

임진 정유 양난이 끝난 후 7년이 지난 후부터 발포의 동민들은 매년 흉년에다 질병이 겹쳐 마을은

 평온을 찾을 길 없이 허덕이고 있었는데 어느 날 80된 노인의 꿈에 발포만호 황정록이 부인 송씨와

어린자식 등 5인 가족의 혼신이 나타나서 우리들이 구천을 헤매고 있으니 동영산 상봉에 제당을

짓고 동제를 지내줄 것을 간청하므로 동민들은 노인의 선몽을 받아들여 그때부터 지금까지

약 400여 년 동안 동제를 지낸 후부터 풍농과 풍어의 시절이 끊이지 않고 동네가 평온했다고 한다.

 
발포리에서  동제를 모시기 시작한 5년 후부터 발포마을 동쪽에 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70m의

야산(느티나무, 팽나무와 천연생 잡목 자생)에 왜가리들이 날아와 3월초부터 날아와 8월까지 살기

시작했다.

 

발포리 주민들은 구천을 헤매던 황정록 가족이 왜가리로 환생하여 찾아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야산을 보호하여 왔으며 최근 수년전부터는 백로가 도래하여 느티나무와 팽나무 등의 잡목 상부에

백로와 왜가리가 뒤섞여 수많은 둥지를 짓고 살고 있으며 그 수는 대략 500마리 이상으로 헤아려 진다.

발포 포구에서 6km 떨어진 남쪽 해안가에 자리 잡고 있는 활개바위는 발포리의 아름다운 절경에

화룡점정을 한 것처럼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데  활을 당긴 모양처럼도 보이고 활개

바위 옆의 남근석과 비유하여 보면 여근석처럼 보이기도 하여 보는 이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발포를 밝개라 하였으므로 밝개가 바뀌어 활개라 한다고 하며, 또 어떤이는 “활개”라는 것은

“활개치다”는 말과 함께 성행위를 뜻하고 바다 가운데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중 하나는

남근석이라 부르고 다른 하나는 구멍이 뚫려 있으므로 활개바위라 부른다고 하는데 옛문헌에는

쌍주석(雙柱石)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활개바위 주위는 큰 군함도 접안할 수 있으며 접안과 동시에 적군이 자유자재로 상륙

할 수 있는 천연적인 요새지라고 하여 임난 때 이곳 경비를 철저히 한곳으로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자료참조]

http://www.goheung.go.kr/


[주변맛집]

 

<전망대가든> 짱뚱어탕 전문집 - 8,000원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683-3  / 061-742-9496

순천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위에 집


<진일기사식당> 김치찌개백반 - 6,000원

순천시 승주읍 신성리 963  / 061-754-5320

맛갈스런 김치와 외갓집맛이 나는 김치찌개가 별미


<평화식당> 한정식 - 한상(4인기준)에 4만원,6만원

고흥군 고흥읍 녹하리 209(군청앞)


[주변멋집]

<하얀노을펜션>

고흥군 동일면 봉영리 1675-5 (나로도제2대교입구) / 061-833-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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