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태백시 중심부인 삼수동에 위치한 황지연못은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로 이 못에서 솟아난
물이 흘러 영남평야를 지나 부산 인근인 남해 바다로 흘러든다.
낙동강은 길이 525km. 유역면적 2만 3860㎢로 압록강 다음가는 한국 제2의 강이다. 강원 태백
황지연못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곡류하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ㆍ영강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으로 받아들이고,
유로를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을, 선산부근에서 감천,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 남지
부근에서 남강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 부근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간다.
태백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는 황지연못은 둘레가 100m인 상지, 중지, 하지로
세부분으로 구분되며 1일 5,000 톤의 물을 용출하고 있다.
하늘 못이란 뜻으로 천황(天潢)이라고도 불리웠던 황지연못이 원래는 황부자 집터였는데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원래 황지연못이 있던 자리에는 이지역의 터주대감이었던 인색하고 성미가 고약한 황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시주를 얻으로 온 노승에게 시주 대신 쇠똥을 퍼 주었는데 이것을 며느리가 보고
놀라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내고 쌀을 한 바가지 시주하였다
그러자 노승이 며느리에게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
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다 봐서는 안된다"라고 말하였다.
마침 아이를 업고 있던 며느리는 자식 걱정에 노승의 말을 듣고 뒤따라 가는데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렀을 때 자기 집 쪽에서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기에 놀라서 노승의 당부를 잊고 돌아다 보자 아이을 업은채로 돌이 되어버렸다.
이 때 황부자 집은 땅 밑으로 꺼져 내려가 큰 연못이 되어버렸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 집터는 세 개의 연못으로 변했는데 큰 연못이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 자리라 한다. 연못의 물은 상지의 수굴에서 솟구쳐 나오는데 항상 수량이 일정하다
황지연못에서 흘러내린 물은 태백시내를 흘러나와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을 만들고 깊은 소를 이루었는데 이곳을 구문소라 한다.
태백시 동점동 산 6-3번지에 위치한 구문소(求門沼)는 구무소의 한자 표기로 구무는 구멍·굴
의 고어이다 또 다른 말로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라고도 한다.
구문소 주위가 모두 석회암반으로 되었으며 높이 20~30여m, 넓이 30m정도로 동양최대 규모라고
자랑하는 환선굴입구보다 몇배나 크다. 이 특이한 도강산맥(渡江山脈)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5천만년에서 3억년전 사이에 형성되어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형을 찾기 힘든 기이한 곳이다.
이 지역 일대는 구문소 고환경 및 침식지형 천연기념물 제41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곳에 구문소
자연학습장이 운영되고 있는데 지질에 대한 전문지식 없이도 약간의 호기심만 있다면 1시간
동안 고생대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맛 볼 수 있다.
구문소는 낙락장송, 기암절벽이 어울러져 일대 장관을 이루고 있고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
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바위, 용천 등으로 불리우는 구문팔경이 있다.
구문소가 생긴 유래에 대해 두가지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그하나는 원래 물이 막혀있어 사근
다리라는 데로 물이 돌아서 낙동강으로 흘러갔는데 안동에 영호루 누각을 지을 때에 상량감
(대들보)을 황지에서 자라고 있는 싸리나무를 베어 낙동강물에 띄어가지고 안동까지 가져가려고
구무소 부근까지 흘러 왔는데 물이 얕아 거기에 멈춰 있다가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데 어느날
밤 에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칠 때 싸리나무가 바위를 들이 받아 절벽아래에 통로가 생겨서
오늘날의 구문소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두번째 전설은 옛날 구문소가 생기기전에 석벽을 사이에 두고 황지천과 철암천에 큰소가 있었
는데 황지천에는 백룡이 철암천에는 청룡이 살면서 늘 석벽곡대기에 올라가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않자 하루는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을 뜷어 청룡을 제압
하여 오랜싸움을 끝내고 승천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구문(구멍)소가 생겨 나게 되었다고 한다.
동점 구문소의 구름다리처럼 생긴 구문소의 거대한 석굴(石窟), 곧 뚜루내(穿川)의 지부석
(地負石)을 자개문(子開門)이라 한다.
고려시대부터 성행하여 조선시대에는 민중들에게 크게 영향을 끼친 정감록(鄭鑑錄)에 쓰여 있기를
「낙동강의 최상류로 올라가면 더 이상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커다란 석문(石門)이 나온다.
그 석문은 자시(子時)에 열리고 축시(丑時)에 닫히는데 자시에 열릴 때 얼른 그 속으로 들어가면
사시사철 꽃이 피고 흉년(凶年)이 없으며 병화(兵禍)가 없고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오복동
(五福洞)이란 이상향(理想鄕)이 나온다.」라고 하였다. 그 오복동(一名 午腹洞)은 지금의 황지,
장성 땅인 태백시 일원을 말하고 석문은 낙동강이 산을 뚫고 지나간 뚜루내(穿川)인 구무소의
크고 둥근 구름다리 형상의 석굴(石窟)이 바로 석문(石門)인 것이다.
구문소에서 제일 위쪽에 3개의 폭포가 나란히 있는데 높이 약 6~7m로 황지천(黃池川)의 물이
이곳에 와서 세갈래로 갈라지며 폭포를 이루어 떨어진다.
옛날 폭포 윗쪽에서 삼형제가 물놀이를 하다가 떨어져 익사하며 삼형제가 다 용이 되어 승천
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때 삼형제 용이 승천하며 바위절벽을 치고 올라가서 생긴 것이 바로 삼형제폭포라 한다.
단기 3904년 선조 4년에 경상감사가 12월 18일 진시(辰時)에 낙동강 상류의 물이 끊어 졌다고
장계를 올려 보고하자 이때부터 민심이 흉흉해졌다.
전하는 말에 낙동강의 물이 끊기면 국가에 큰 난리가 난다고 하였다. 이것을 낙동강의 절류
(絶流)라 하며 지금의 용소(龍沼)위에 있는 삼형제 폭포의 물이 끊겨 흐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로 그후 임진년에 왜군이 쳐들어와 강토를 유린하자
백성들은 구문소의 영험함을 확인하였고 신령스런 곳으로 두려워 하였다.
[관련자료]
[태백맛집]
<감자옹심이> 감자옹심이
강원도 태백시 삼수동 83-23호 / 033-554-0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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