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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돌목 진도대교앞에 조성된 명랑대첩기념 우수영관광지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9. 2. 2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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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에 위치한 명량대첩공원은 임진왜란 3대 수군대첩지의 한곳으로

 이순신장군이 대승리를 거두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한명량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울돌목 전라도 우수영 지역에 건립되었다.  

 

진도 울돌목 진도대교 건너 맞은편에 위치한 우수영관광지에는 중앙에 위치한 명랑대첩탑을 중심

으로 부녀자들이 군무를 춰서 왜적을 현혹시켜 명랑대첩 승리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강수월래

전수관을 비롯하여 유적공원, 거북선모형을 전시한 우수영전시관, 우수영 제일높은곳에서 울돌목

을 내려다 볼수 있는 전망대등 다양한 시설이 조성되어 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다. 

 

울돌목은 해남 문내면 학동과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이곳의 가장 짧은

 거리는 323m이며 가장 깊은곳의 수심은 20m에 이르러 매우 빠른 급류가 흘러 평균 11.5노트

(시속 약 24km)의 물살이 흐르는 곳이다.

명량은 급류가 흐르면서 서로 부딪쳐 울며 나는 소리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내가 이곳을 찾아

간 날에도 여전히 급류가 흐르고 있어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배는 엔진소리도

 요란하게 힘을 다해 가는것 같은데 배가 제자리에 서있는듯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동쪽에서 서쪽으로 내려가는 배는 엔진소리도 조용하게 물위를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려

가는 모습이 해류의 힘을 확실하게 알게 해주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연전연승하던 이순신장군은 환란이 일어났음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양반들

과 모함과 국난을 좌초한 무능한 선조의 시기로 모진고초와 옥고를 치르게 되었고 이때를 틈타

 수군을 맡은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막강했던 조선수군을 수장시켜 국가존망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왜군들은 4백여척에 2만명의 군인을 싣고 울돌목을 통과하여 예성강으로 진출하여 직산에

 머물러 있던 육군과 합세해 서울을 침범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때 이순신장군은 옥에서 풀려나 권율 휘하에 있다가 백의종군하던 중 나라의 위태로움 때문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을 받고 그날로 장흥 회령포에 이르러 간신히 12척의 범선을 수습하고

 수하 장수들에게“나라의 위태로움이 여기에 이르렀으니 우리가 어찌 한번의 죽음을 두려워하랴,

 이제 모두 충의에 죽어 나리지킨 영광을 얻자”라는 결전의지를 다지고 이곳 우수영에 당도했다.

 


임진년 전라수사로 있을 때부터 울돌목의 지형조건을 파악한 장군은 치밀하게 준비해 나갔다.

 쇠사슬 두줄을 안목과 밖목에 건너 매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도록 울돌목에 장치해 두고

 장수들을 불렀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 하였고 또 한사람이

 길을 막으면 천사람을 두렵게 할 수 있다 하였으니 이것은 지금의 우리를 이름이라. 공들은

 살 생각을 말고 조금도 명령을 어기지 말라' '나라를 위해 죽기로서 싸워라, 만일 조금이라도

 영을 어기는 자는 군법을 시행하리라' 하여 임전결의를 다졌다.


1597년 9월 16일 새벽. 드디어 어란포에 머물고 있던 일본수군들이 밀물을 타고 명랑으로 공격해

 왔다. 이순신이 12척의 배로 이를 공격하니 왜선이 이순신의 배를 포위하여 격전이 벌어졌으나

 장군은 적장 마다시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이때 기다리고 기다렸던 조수가 썰물로 돌아서자

 마다시와 기함을 잃은 왜군들은 혼비백산 도망가느라 바빴다.

이때 대파된 왜선은 1백 33척으로 세계해전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대승리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명량대첩이다. 명랑대첩의 승리로 인해 조선수군이 제해권을 다시 장악하게

 되었고 왜군의 북상을 막고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명량대첩은 수군의 숫자가 별로 없는 가운데 의병들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를 거둘수 있었는데

 마하수 5부자의 활약이 좋은 예이다. 적선에 포위된 통제사를 호위하다가 적탄에 맞아  부친이

 전사하자 일성통곡으로 복수를 맹세한 마씨 형제들은 적이 패퇘할때까지 죽기를 각오로 결사항전

하여 적을 패퇴시키는데 일조하여 효심과 충심을 함께 하였다.

 

명랑해전에서도 혁혁한 전과를 세운 거북선은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창안하여 1592년에 건조한

 세계 최초의 철갑 거북선으로 16개의 노와 2개의 돛이 있어 기동성 있게 진퇴할 수 있었고,

 130~150명이 승선할 수 있었다.

 


[관련자료]

http://www.haenam.go.kr/


[해남맛집]

<소문난 임하기사식당> 백반 6,000원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036-3우수영관광지앞 / 061-535-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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