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도심의 동쪽을 에워싸고 솟은 무등산은 최고봉인 천왕봉(1,187m) 주변에 위치한
서석대·입석대·규봉 등 수직 절리상의 암석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자태를 뽐내고 있는
광주의 진산으로 1972년 5월 22일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무등산은 소백산맥을 주맥으로 하여 남쪽에 우뚝솟은 산으로 10%미만 경사지 64.9%를 차지할
정도로 경사가 완만하고 연평균 13.2℃ (광주시가와 5℃차이)이고 강우량은 연 약1,500㎜
(광주시가보다 200㎜많음)이며 청명일 연53일로 날씨 변화가 심한편이다.
최근에 무등산의 자연명소인 입석대와 서석대에 산책로와 전망대를 설치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무등산의 아름다움을 바로 지척에서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입석대와 서석대를 보기위해서는 무등산 증심사지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중머리재를 거쳐
장불재로 오르는 3km의 구간이 제일 무난한 구간이다.
증심사에서 중머리재를 올라가다보면 당산나무를 만나게되는데 광주시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는 수령이 480년으로 그 넉넉한 품으로 이곳을 찾는이들의 쉼터역활을 하고 있는 나무이다.
증심사 입구에서 2km 정도 올라가면 무등산 산행의 중심이 되는 중머리재에 도착하게 된다.
중머리재에서 땀을 식히면서 증심사 방향을 바라다보면 광주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무등산이
왜 광주의 진산이라고 부르는지 그이유를 바로 알수있게 된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를 향해 올라가다보면 너덜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용추폭포(용추계곡) 윗
지점인 용추삼거리를 도착하게 된다.
너덜’, ‘너덜겅’은 암석 무너진 것이 산비탈을 덮은 것으로 한마디로 ‘돌바다’라고 할 수
있다. 너덜은 지구의 화산 활동이 활발했을 무렵 땅 속의 바위들이 솟아오르면서 용암이 되어
흐르다가 식어버리자 산비탈을 따라 미끄러져 내려와 쌓여 형성되었을 것이다.
중머리재에서 장불재에 이르는 길은 해발고도과 점점 높아지는 곳으로 겨울에는 눈이 내린후
좀처럼 녹지 않은 곳이기에 아이젠을 필히 챙겨서 올라가야 산행시 낭패를 당하지 않게 되니
이점 꼭 유의해야 한다.
용추삼거리를 지나 장불재에 올라서면 동북쪽으로 거대한 병풍을 둘러 쳐놓은 것 같은 장엄한
돌무더기가 펼쳐져 있다. 이것이 유명한 서석대이다
서석대(1,100m)는 동쪽에서 서쪽을 향해 줄지어 서 있어서 저녁노을이 물들 때 햇빛이 반사되면
수정처럼 강한 빛을 발하면서 반짝거리기 때문에 ‘서석의 수정병풍’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등산을 서석산이라 부르는 것도 이 서석대의 돌 경치에서 연유한 것으로 서석대의 병풍바위는
청명한 날이면 광주시가지에서도 그 수려한 모습을 바라볼 수 있고, 5월 하순쯤 이곳에 만개한
연분홍 철쭉꽃은 기암절벽과 어울려서 초여름 무등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장불재에서 서쪽으로 새로 만들어진 산책로를 따라 약 400m쯤 오르면 정상의 서쪽 해발 1,017m
지점에 입석대(立石臺)가 전망대가 나온다.
계단을 올라서서 석축으로 된 단 앞에 위치한 전망대에 오르면 제주도 주상절리대에서 보았던
5~6모 또는 7~8모로 된 돌기둥이 반달같은 모양 으로 둘러서 하늘을 향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입석대의 이 바위기둥들은 대체로 화산폭발의 산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등산에서
화산활동이 일어난 시기는 정확히 측정된 바 없지만 중생대 백악기 후기(대략 9천만년 전 전후)
로 추정되고 있다.
제봉 고경명선생이 쓴 유서석록에 의하면 입석대 주변에는 입석암, 상원등암, 삼일암을 비롯한
10여개의 암자들이 바위 사이사이에 자리하고 함께 어울어져 무등산 제일명소라고 했다.
그흔적으로 기둥을 세웠던 구멍뚫린 주춧돌을 쉽게 찾아볼수가 있어서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입석대를 돌아서 올라서면 특이한 문양이 바위위에 새겨진 승천암이라는 명소를 만나게된다.
옛날 이부근의 암자에 무엇엔가 쫒기던 산양을 스님이 숨겨주었는데 이무기가 나타나 산양을
잡아먹어야 승천을 할수 있는데 네가 방해 하였으니 너라도 잡아먹어야 겠다고 달려드는 순간
어디선가 난데없이 우렁찬 종소리가 들려와 이무기가 그소리에 놀라도망친 흔적이 자욱이라고
전해져 온다.
무등산의 산 이름이 기록에 나타난 것은『삼국사기』에 '무진악(武珍岳)' 이라 표기된 것이 처음이다. 『삼국사기 잡지 지리편
(雜志 第五 地理三)』에는 무진주(武珍州), 무주(武州)라는 지명이 보이고 잡지 제1 제사편의 소사조(小祀 條)에 무진악,
무진주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무등산이라는 산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띄는것은『고려사』인데 악지(樂志)의 삼국 속악 백제조(三國 俗樂 白濟條)를 보면 '
무등산은 광주의 진산이다. 광주는 전라도에 있는 큰 고을이다. 이산에 성을 쌓았더니백성들은 그 덕으로 편안하게 살며
즐거이 노래를 불렀다(無等山 光州之鎭山. 州在全羅道巨邑. 城此山 民束負以安樂而歌之)'라는 기록이 있어 무등산 이란 산
이름을 알려준다.
무등산이란 명칭은 서석산(瑞石山)과 함께 고려 때부터 부른 이름으로 '무돌', '무진'이라 했던 것이 무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무등산의 어원에 대해서 몇가지 설이 있는데,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등산의 '무등'은 '무돌'의 이두음인데, 이 '무돌'에는 옛 농경사회의 보편적 지명인 '물둑(水堤)'이라는 뜻과 순수 우리
옛말의 조어인 '무지개를 뿜는 돌'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고, 비할 데 없이 높고 큰 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산
이라는 뜻도 있겠으나 무당산' 의 '당산'과 비슷한 음을 따서 한자로 나타냈을 가능성도 있다.
한편 노산은 이 산이 불교적 영장(靈場)이 된 뒤에 불교적인 가치를 설명한 이름일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불교사전
(동국역경원 간)에 의 하면 '無有等等'은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라 하니 결국 무등산은
불교의 이 말을 빌려다 이름으로 삼아 불교적 가치를 더욱 높인 것이라고 하겠다.
무등산은 불교와 인연이 적지 않다. 곳곳에 수많은 사찰과 고승들의 전설이 서려 있고, 산의 경관이 좋은 곳마다 불교적
명칭들이 남아 있다. 지왕봉을 비로봉, 인왕봉을 반야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삼존석(彌勒, 觀音, 如來)이나 의상봉, 윤필봉,
규봉의 법화, 설법, 능엄 등 여러 대(臺)의 이름에서도 이 사실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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