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신선들도 쉬어간다는 편안한 터 김제 모악산 귀신사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8. 11. 30. 16:32

본문

728x90
e땡큐

전주에서 712번 지방도로를 타고 금산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축대위에 터를 잡고 있는 귀신사가 바라다

보인다. 예전 필름카메라를 들고 여행다닐때는  마을속에 좁은길을 따라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 갔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길을 시원하게 만들어서 길가에서 훤히 보이게 만들어 찾아가기가 좋았다. 

 전북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81번지에 위치한 귀신사는 최치원이 [당대천복사고사주번경대덕 법장화상전]의

 각주에서 국신사(귀신사의 옛이름)를 화엄십찰의 한곳으로 기록하였기에 화엄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다.

또 다른 창건에 관한 설이 전해오는데 자수무경(1664-1737)의 [전주무악산귀신사사적사인]에  백제 법왕때

 원당사찰로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져 온다.(원당사찰은 왕실의 안녕과 명복을 빌기위해 지은 자복사찰을

 이르는 말이다.)

귀신사의 위치가 백제땅에 속하는 지역이었고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외세인 당나라의 힘을 빌어 제거하는

 과정에 전쟁의 참화를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군사들의 창칼앞에서 의상대사를 들먹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한때는 8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귀신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보물 제826호 지정된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명부전, 요차채등이 있고 중요문화재로 귀신사 3층석탑, 귀신사부도, 귀신사석수 등이 있다.


보물제826호로 지정된 귀신사대적광전(歸信寺大寂光殿)은 지혜의 빛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당으로 17세기 경에 다시 지은 것으로 짐작된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3칸 문에는 빗살무늬 창호를 달았고, 오른쪽과 왼쪽 끝칸인 퇴칸은 벽으로 만든 점이 특이하다.


귀신사 대적광전에는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에 약사불(向右)과 아미타불(向左)을

 삼불형식으로 배치한 흙으로 제작한 소조상인 보물제1516호 귀신사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歸信寺 塑造

毘盧遮那三佛坐像)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 17세기에는 대형의 소조불상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이 삼불좌상은 보물 제1360호 법주사

소조삼불좌상(玄眞 作, 1626년), 보물 제1274호 완주 송광사 소조삼불좌상(淸憲 作, 1641년) 등과 더불어

 이러한 양상을 입증하여 주는 좋은 예이다.


이 삼불좌상은 규모가 매우 커서 법당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어 보는 이를 압도하게 하는데, 인자하고 부드

러운 얼굴표현과 허리가 긴 장신형(長身形)의 불신(佛身)은 매우 우아하고 품위 있는 불격을 보여준다. 특히,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 쥐고 왼쪽 검지 끝을 오른쪽 검지 첫째마디 쪽으로 뻗은 지권인의 표현은 명대 비로

자나불에서 나타나는 수인(手印)이며 허리가 긴 장신형의 불상비례 역시 명초에 유행하던 표현이어서 명대

 조각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이 삼불좌상은 조선시대 1633년에 작성된 귀신사 나한전낙성문에 1633년 이전에 삼불상이 만들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자수(子秀) 무경(無竟)의 <전주모악산귀신사사적사인(全州母岳山歸信寺事蹟詞引)>에 의하면

 절의 중건이 1624년이라고 하므로 1624년에서 1633년 사이에 삼불좌상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귀신사 대적광전 뒤편으로 소나무와 대나무에 둘러쌓여 있는 시도유형문화재 제62호(김제시)로 지정된

 귀신사석탑(歸信寺石塔)은 바닥돌 위에 여러 장의 돌을 짜맞추어 기단(基壇)을 만들고 그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처마가 거의 평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 남아 있다.

 

얇고 넓은 지붕돌의 곡선미와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조성된 수법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 양식을 이어받은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추측된다.


시도유형문화재 제64호(김제시)로 지정된 귀신사석수(歸信寺石獸)는 귀신사 3층 석탑 앞쪽에 놓여 있는

 것으로 사자상이 머리를 치켜들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

웅크리고 있는 사자상 등 위로 남근석(남성의 생식기 모양으로 다듬은 돌)이 놓여 있는데 남근석은 2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아랫부분은 대나무에서와 같은 옅은 마디를 두었다.


사찰 내에서 이러한 조각상을 찾아보기란 매우 드문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두가지의 설이 제기되고 있다.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화기를 억누르기 위해 세웠을 것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원래 남근석을 두는 사찰은

 백제 왕실의 내원사찰(內願寺刹)뿐이므로, 이로 보아 이 절은 백제 때의 사찰일 것이라는 설이 그것이다.

만든 시기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그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과 사실적인

 조각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는 작품이다.



최치원이 “법장화상전”전을 집필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귀신사는 고래로 김시습을 비롯한

 많이 문인들이 이곳을 찾았고 전주출신 소설가 양귀자에게 이상문학상을 안겨준(1992년) “숨은꽃”에는

 귀신사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오는 글귀들이 넘쳐난다.

그중에 한구절을 인용해보면 “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귀신사의 텅빈 적요속에서 두어시간쯤 앉아 있고

 싶었다. 무작정 떠남에 있어 가장 많은 유혹을 던졌던 곳도 귀신사였다. 거기에는 무언가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계획 속에서 자꾸 귀신사행을 뒤로 미루기만 하였다.... 중략.... 영원을 돌아다니다

 지친 신이 쉬러 돌아오는 자리. 이름에 비하면 너무 보잘것 없는 절이지만 조용하고 아늑해서 친구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그절을 찾는다고 했다.” 라는 글귀에서 귀신사의 분위기와 정경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지는것만

 같다.


[자료참조]

http://www.guisinsa.org/

http://www.cha.go.kr


[주변 맛집]

<참밀드림> 오디, 뽕잎 찐빵 -3,000원 / 뽕잎 만두 -3,000원

            전북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454-3 / 063-547-5005


<곰돌이네> 시래기민물새우가 나오는 백반 5,000원

           전북 김제시 요촌동 373-36 / 063-546-1238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