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김유신이 수행중에 보검을 얻어 바위를 갈랐다는 경주 단석산 신선사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9. 12. 23. 14:51

본문

728x90

김유신이 수행중에 보검을 얻어 바위를 갈랐다는 단석산 신선사

                                 

단석산은 신라의 중악에 해당되는 곳으로 경주의 지붕이라고 할 정도로 서라벌(지금의 경주)

 일대에서는 가장 높고, 깊어 언덕형태의 낭산이나 경주에서는 가장 넓은 남산 보다는 화랑들

이 수련하기 위해 자주 들렸던 곳이다.  

 

지금도 이곳 단석산에 오르려면 산중도로가 뚫려 있기는 하지만 산길이 험하고 높아서 사륜구

동이 아니면 마지막까지 오르기 힘들정도가 산세가 깊은곳이다.

 

선덕여왕에 출연했던 김유신이 나무로 만든 칼인 목검을 들고 바위를 내리친곳도 원래는 이곳

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와 관련하여 단석산과 김유신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는데 김유신이 17살 되던 해에 드라마 선

덕여왕에 나오는 망라사방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화랑들이 자주하던 수련을 하고자 단석

산을 찾아 수도하고 있었다.

 

몇날 며칠을 정신수양과 체력훈련 그리고 검술훈련을 하면서 정진을 하다가 난승이란 도승을

만나게 되었고 난승의 도력을 알아챈 김유신이 간청을 하여 무에를 전수받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김유신에게 무예전수를 끝마친 도승이 김유신에게 보검을 주었는데 김유신이 그보

검으로 옆에 있던 바위를 향해 휘두르자 바위가 두부가 갈라지듯 순식간에 두 쪽으로 갈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이후로 이산 이름을 단석산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단석산 중턱에 가면 그때의 전설을

 증명이라고 하려는듯 커다란 바위가 가운데가 갈라진 형태의 단석을 볼수가 있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 산 89번지 단석산 중턱에 위치한 신선사대웅전 앞을 지나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거대한 바위가 두쪽으로 갈라져 있는것을 볼수가 있다.

 

 

리고 그 바위뒤로 돌아가면거대한 암벽이 ㄷ자 모양으로 높이 솟아 하나의 석실(石室)을 이루

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인공적으로 지붕을 덮어서 석굴 법당을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되

는데, 바위면에는 10구의 불상과 보살상이 새겨져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곳이 신라 최초의 석굴사원으로 국보 제199호 지정된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으로 김유신

과 난승의 전설에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는곳이기도 한곳이다.

 

동북쪽의 독립된 바위면에는 도드라지게 새긴 높이 8.2m의 여래입상이 1구 서 있다. 둥근 얼굴

에 미소가 가득하며, 머리 위로 2단으로 된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작게 솟아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에는 U자형 주름이 선명하고, 트인 가슴 사이로는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내려 손끝이 아래로 향하여 손바닥이 보이게 하고

 있다.

 

 

동쪽면에는 높이 6m의 보살상이 새겨져 있는데, 상반신에는 옷을 걸치지 않았으며, 왼손은 들

어서 가슴에 대었고 오른손은 몸 앞에서 보병(寶甁)을 쥐고 있다.

 

마멸이 심해서 분명하지는 않지만 남쪽면에도 광배(光背)가 없는 보살상 1구를 새겨서 앞의 두

 불상과 함께 삼존상을 이루고 있다. 이 보살상의 동쪽면에는 400여 자의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선사(神仙寺)에 미륵석상 1구와 삼장보살 2구를 조각하였다’라는 내용이다.

 

 

북쪽 바위면에는 모두 7구의 불상과 보살상, 인물상이 얕게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왼쪽에서부

터 여래입상, 보관이 생략된 보살입상, 여래입상,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반가사유

상을 제외하고는 모두 왼손을 동쪽으로 가리키고 있어 본존불로 인도하는 독특한 자세를 보여

준다.

 

아래쪽에는 버선같은 모자를 쓰고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한 공양상 2구와 스님 한분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인의 모습을 추정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7세기 전반기의 불상 양식을 보여주는 이 마애불상군은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시원(始原) 형식

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당시 신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자료참조]

http://guide.gyeongju.go.kr/

http://www.cha.go.kr/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