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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뼈아픈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익산 왕궁저수지 함벽정의 벚꽃길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4. 15.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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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뼈아픈 흔적을 찾아볼수 있는 익산 왕궁저수지 함벽정의 벚꽃길

 

익산인터체인지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곳이 익산보석박물관이고 그뒤 서대산자락 아래 넓게 자리

잡고 있는 호수가 왕궁저수지이다.

 

보석박물관을 왼편으로 하고 왕궁저수지 뚝방으로 함벽정으로 올라가는 길에 오래된 고목나무

에서 화려한 꽃잎을 피워내는 나무가 벚꽃나무이다.

 

수령을 알수 없는 오랜된 고목나무위에 앙상하게 자리잡고 있는 가지에서 화려하게 피어나는

벚꽃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이곳을 지켜왔을 벚꽃의 연륜을 느끼게 해준다.

 

왕궁저수지에서 흘러나오는 배수지위로 비치는 벚꽃의 반영은 우리에게 많은것을 알려주는듯

말없는 이야기를 전해주는것만 같다.

 

익산은 군산과 더불어 일제식량자원 침탈의 대표적인 지역이었던 호남 곡창중 하나로 호소가와

 농장과 더불어 일제 수탈을 위해 세워진 저수지가 바로 왕궁저수지이고 이를 기념해서 진입로

에 벚꽃나무를 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이제 일본군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물러갔지만 벚꽃나무는 그 자리에 남아 해마다 봄이 오

면 화려한 꽃을 피우며 그시절의 호사와 아픈흔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1919년 기미년 삼일만세운동이 전국에 열화와 같이 번지며 일제의 강압으로부터 우리민족의

자존을 외치던 무렵에 조성되어 1920년 완공되었다는 왕궁저수지는 일제약탈의 대표적인 조직인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깊숙이 관여되어 완공된 저수지이다.

 

1930년 3월 27일 왕궁수리조합을 설립하고 조합장에 송병우 창립위원에 동양척식주식회사,

송병태, 이학승등이 창립위원이었다는 내용이 왕궁저수지 준공기념비에 새겨져 있어 이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왕궁저수지의 면적은 약8.86km2 로 위에서 내려다보면 부메랑형태를 보이고 있어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만 같다.

 

만수위는 11.8m로 물이 넘치면 여수로를 통해 물을 내보내는 월유식이었는데 1992년에 수문을

 만들어 물이 넘칠때 수위 조절을 위하여 일시에 방출할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왕궁저수지에 모인 물은 왕궁천을 따라 흐르면서 춘포면을 흐르다가 익산천에 합류되면서 금마와

 춘포 인근의 논에 물을 댈정도로 수량이 풍부한 저수지였다고 한다.

 

1920년에 왕궁 저수지의 둑이 완성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해서 왕궁저수지 둑과 수문사이에

석축을 쌓고 1935년에 송병우가 푸르름을 머금었다는 의미를 담은 의미의 정자가 바로 함벽대

이다.

 

저수지 둑방에서 함벽정으로 오르는 언덕입구에 문기둥처럼 석주가 두 개 세워져 있고 오른편

 석주에 함벽정이라고 조각을 해놓아 친일파들의 유세가 대단했음을 알수가 있다.

 

석축아래에는 함벽정과 저수지를 관리하던 관리사 건물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어 왕궁수리조합과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위세를 한눈에 알아볼수가 있을 정도이다.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정자로서는 규모가 큰 것에 속한다.

기둥 위의 공포는 이익공계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평주위 공포의  쇠서가 전면

으로만 돌출되는데 비해 이 건물에서는 좌우 대각선 방향으로도 돌출시켜 마치 귀기둥에서의

 공포결구수법과 같이 짜여져 특이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정자안에는 일제시대의 핍박받던 우리민족의 아픔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유롭고 한가로운 그림

들이 그려져 있어 일제시대 양반귀족들의 영화가 어떠했을지 미루어 짐잘할 수가 있다.

 

1986년 9월 8일 익산시 시도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함벽정(涵碧亭)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전북 익산시 왕궁면 동용리 산 572-4번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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