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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여년된 술독에서 막걸리가 맛있게 익어가는 수안보 월악산막걸리

맛집멋집-충청도

by 마패여행 2010. 8. 15.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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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여년된 술독에서 막걸리가 맛있게 익어가는 수안보 월악산막걸리

막걸리는 소주나 맥주와 달리 제조 방법이나 원료, 효모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진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가루 등 녹말이 풍부한 곡물을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만든다. 발효가 충분히 진행되면 채로 거른 뒤 물을 타서 알코올 농도가 6% 정도 되도록 만든다. 발효과정에서 생긴 탄산이 술에 남아 톡 쏘는 맛이 난다.

우리 전통막걸리의 맛을 제대로 살리려면 도기로 만든 항아리에 술아 담아 발효시키여 제대로된 맛을 낼수 있다.

  

전국에 막걸리를 만들어내는 양조장이 많이 있고 기계화 되어 대량생산을 하는곳도 있지만 항아리에서 술을 숙성시키는 곳은 찾아서 제대로된 막걸리를 먹는다는 것은 술도가에 찾아가보지 않고서는 알수 없는 일이다.

수안보 온천욕을 가서 수안보상록호텔앞에서 토요일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월악산막걸리 무료시음행사를 보고 그맛에 반하여 수안보양조장 ‘월악산충주탁주’공장을 찾아간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수안보양조장에서는 1963~ 1970년대까지 사~오십년 세월동안 막걸리를 담아온 술항아리들에서 보글보글 부글부글 술이 익어가면서 술익는 냄새가 코끝을 간지르고 있었다.

박목월의 시에 나오는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라는 시구가 저절로 입에 흘러나오는 분위기였다.

 

 

수안보 양조장의 창업자인 고 장인환씨는 형과 함께 어려서부터 책가방이 아닌 막걸리를 들고 온동네를 달려야 했다. 1935년부터 장인환씨와 그 형은 충주의 한일양조장에서 술 배달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가까운 술집이나 여염집에 가벼운 술통을 들고 맨발로 뛰어다녔다. 오일장이 서거나 초상집, 잔치집이 있으면 나무로 만든 말통을 물지게에 지고 배달하고 나중에는 짐받이가 큰 막걸리자전거로 배달을 했다. 나이가 들면서 마차로 배달을 하면서 점차 막걸리에 대해 원료와 제조 판매 등에 대해 모든 것을 공부할 수 있었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까지 끝난 직후인 1953년 그와 형은 중원군 이류양조장을 인수하여 잠시 동업하다가 1955년 충주가 아닌 단양에서 드디어 매포양조장 문을 열었다.

매포양조장을 운영한지 3년만인 1958년 매포양조장을 팔고 충주 목행양조장을 인수했다.

목행양조장을 운영하면서 1963년에 수안보 로얄호텔 뒤 현재 수안보양조장의 전신인 상모양조장을 인수하였다. 당시에는 수안보가 아니라 상모면이었다.

 

상모양조장이 워낙 영세하여 인수 후 막걸리 제조 항아리를 모두 큰 것으로 들이고 국세청 검증을 받았는데 그게 1963년 7월 11일이다.

지금 수안보 양조장에 있는 1963년이라고 쓰여진 항아리가 그때 들여온 술항아리이다.

 

1974년 향년 54세의 안타까운 나이에 장인환씨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둘째 아들 장기서씨가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막 직장을 구한 사회초년생으로서 급작스런 아버지의 별세이후 가업을 맡을 수 밖에 없게 되어 28세에 그렇게 수안보양조장 사장이 되었다. 

 

충주의 목행양조장과 수안보양조장을 번갈아 오가며 어릴 적 매포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시절을 되새기며 술도가 인생에 접어든 것이다. 막걸리 시장은 계속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고군분투하며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막걸리 양조장의 수는 계속해서 줄어 1980년대에는 전국에 1,300여 곳만 남았다.

한편 수안보에도 또다른 변화가 있었다. 왕의온천 수안보에 각종 온천장이 들어서면서 온천원수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수안보 한가운데 있던 수안보양조장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막걸리의 맛은 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천연지하수가 부족하다고 수돗물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장기서 대표는 1983년 수안보온천에서 3km쯤 상류의 물이 맑고 풍부한 수회리로 양조장을 이전한다. 아버지가 수안보에 상모양조장을 인수한지 20년, 장기서 대표가 이어받은지 10년만의 일이다. 이전할 때까지도 지명은 상모면이었기에 수안보양조장이 아니라 ‘상모양조장’이라고 새긴 간판이 있다. 2005년 4월 1일에 상모면은 수안보면으로 개칭되었다. 

 

2000년대 세 자릿수가 된 막걸리 양조장은 2007년에 778곳으로 집계되었다.

장기서 대표도 2004년에 목행양조장의 막걸리 제조를 중단하고 ‘충주탁주’ 브랜드는 수안보양조장으로 그대로 가져왔다. 이제는 수안보양조장 하나로 승부를 해야만 한다.

 

요즘 웰빙에 맞춰 막걸리 열풍이 불면서 조금이나마 양조장이 새로 생기고 있다.

하지만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지역별 전통주인 막걸리가 이제는 대기업의 대량생산품으로 변신하면서 오히려 저가 융단폭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 뿐 아니라 이제는 방방곡곡 휴양지까지 파고든다고 한다.

 

장기서 대표는 “막걸리는 물이 생명이다. 그리고 살아 있는 물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막걸리로 만드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전통적인 술빚기이다. 급하지 않게 자연의 온도와 습도를 살펴가며 술익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정직하게 만들어 놓으면 한 사발 마시는 사람마다 그 맛을 당연히 알게 된다. 사십년간 항아리를 쓰다듬으며 이 믿음을 저버린 적이 없기에 내일도 수안보양조장은 월악산 깊은 물로 생생한 막걸리를 빚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수안보양조장 ‘월악산충주탁주’ 대표 장기서

주소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수회리 681-2

핸드폰 011-485-3251 사무실 043-848-3365 팩스 043 - 844 -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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