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벌 동쪽 끝으로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향수의 시인 옥천 정지용생가
향수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이 나고 자란 고향 옥천읍 하계리에 가면 실개천 건너 아담한 초가지붕을 인 시인의 생가와 그 옆에 자리잡은 정지용 문학관을 만나게 된다.
정지용 생가가 있는 구읍 거리에 있는 상점들에는 시이자 노래인 향수에 나오는 “얼룩백이‘ 황소”나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향수 호프” “시가 있는 상회” 등의 정지용 시와 관련된 구절들이 써있는 모습을 볼수가 있다.
옥천역이 신시가지에 세워지면서 구시가지가 된 구읍 실개천에 놓인 청석교를 건너면 정지용의 향수 시비가 세워진 담너머로 정지용 생가가 보인다.
정지용생가 왼쪽에 난 싸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에 우물가가 보이고 그뒤로 초가삼간으로 정지용이 살았던 집을 복원되어 있는 마당에 들어서면 향수의 시구절이 절로 떠오르게 되면서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된다.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물레방아가 서있는 정지용 생가의 동쪽 사립문을 나서면 향수30리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마당 오른쪽에 정지용 동상이 세워져 있고 안쪽에 정지용 문학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지용문학관에는 테마별로 정지용의 문학을 접할 수 있도록 지용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문학지도, 시·산문집 초간본 전시 등 다양한 공간을 있어서 정지용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고 대표적인 작품을 다양한 방법으로 감상하며 체험할 수 있다.
정지용은 6 · 25발발 와중에 갑자기 행방불명되고 그후 정부는 그를 월북작가로 분류해 그의 작품 모두를 판금시키고 학문적인 접근조차도 금지시켰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988년에서야 그의 작품은 해금 되어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그 해금조치 직후 정지용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용회’를 만들어 모임을 갖게 되었으며 그 이듬해 정지용 생가는 비로소 복원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기에 이른다.
정지용은 시어를 고르고 다듬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되지 않는 고어나 방언을 시어로 폭넓게 활용하고, 언어를 독특하게 변형시켜 자신만의 시어로 개발했다. 시의 형식면에서 지용은 2행 1연으로 된 단시형을 즐겨 썼다.
또 줄글식 산문시형도 즐겨 썼는데, 이들 작품은 쉼표나 마침표 없이 문장이 종결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연계적 구성을 보여준다.정지용은 대상의 뒤에 자신을 숨기고 대상을 적확하게 묘사하는 명징한 모더니즘-이미지즘의 시 세계를 열어 보였다.
철로 설치를 반대해서 옥천의 중심상권을 옥천역이 세워진 금구리에 내어준 구읍 사거리에 가면 1910년경 지어진 일본식 상가건축물이 옛 모습 그대로 우편취급소를 중심으로 시간이 멈춰선 거리를 만나게된다.
정지용 생가 답사 후 마을 구경삼아 구읍을 돌아본다면 그 ‘철로설치 반대사건 덕’에 옛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어 정지용 생가와 함께 구한말부터 근대까지의 주거변천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
정지용생가- 문학관
주소 | 충북 옥천군 옥천읍 하계리 40-1번지
문의 | 043-730-3408
홈페이지 | 정지용문학관 http://www.jiyong.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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