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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한몸에 받았던 영원한 어머니상 고 육영수여사 생가지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2. 1. 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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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사랑과 믿음을 한몸에 받았던 영원한 어머니상 고 육영수여사 생가지

유행가로 작곡이 되어 더 유명해진 향수의 시인 정지용생가를 지나 옥천읍 구읍 윗동네 교통리에는 힘들고 어렵던 시절 국민들의 믿음과 사랑을 한몸에 받던 고 육영수여사가 살았던 생가가 복원되어 옛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육영수여사가 1925년 태어나 1950년 박정희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교동집터는 2002년 충청북도 기념물 123호로 지정되어 2010년 안채, 사랑채, 위채, 아래채,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이 세워졌다.

옥천 유지였던 육종관과 이경령의 1남 3녀 중 장녀로 태어난 육영수여사는 1938년 죽향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5년 20세 때 고향으로 돌아와 옥천공립여자전수학교에서 가사 과목 교사로 1년3개월간 교편을 잡았다.

 

6·25전쟁중인 1950년 12월 소개를 만난 육군 중령이었던 박정희와 결혼해서 1963년 박정희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영부인이 되어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었는데 슬하에 한나라당 대표을 역인한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 박지만 박영령 등 1남2녀를 두었다.

 

 

육영수여사는 남들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하는 한센병 환자(나환자)촌을 직접 방문하여 자활사업을 지원하였고 적십자 활동의 선봉에 서서 풍수해 현장에 비를 맞으며 달려가 재난당한 사람들을 위문하였다.

 

소년소녀 잡지 ‘어깨동무’를 발간하여 농어촌 어린이에게까지 배포하기도 한 육영수 여사는 1969년 4월 어린이 복지재단인 육영재단을 설립하여 어린이날에 맞춰 어린이 대공원, 어린이회관의 건립하고 1972년에는 부산 어린이회관을 기공하였고 1973년 불우 청소년과 빈자들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기관 정수직업훈련원을 세웠다.

블로그 포스팅 : 여행블로거 / 맛집블로거 / 대한민국 대표여행지 1000 여행작가(도서출판 넥서스) - 강경원의여행만들기 (대화명: 마패)

육영수생가지

주소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 / 043-730-3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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