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길 신문왕길을 따라 찾아간 동해바다 푸른 물결위에 둥실 떠있는 문무대왕 수중능과 이견대
용이 산다는 용당리 앞으로 지나 푸른바다로 흘러드는 대종천이 동해바다와 만나는 봉길해변에는 푸른물결위에 마치 용이 바다위를 스쳐가는듯 보이는 바다위로 길게 누워있는 바위섬이 보는이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동해안 7번국도 경주구간을 달리다보면 양북면 봉길리 동해바다 한가운데 갈매기들이 호위하듯 춤추는 곳에 푸른 바다위에 우뚝선 바위섬이 장관인데 내가 찾아간날에는 길일이라고 용의 힘을 빌리려는 무속인들과 소원풀이를 위해 참배를 하러온 사람들이 수중릉을 바라보고 한없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동해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바위섬은 국가 사적 제 158호로 지정된 대왕암이라 불리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수중릉으로 신라 제 30대 왕이었던 문무대왕릉이 묻혀있는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681년 7월에 왕이 돌아가니 시호를 문무라 하고, 왕의 유언에 따라 불교식으로 화장하여 동해구 대석상에 장사하였다” 고 전한다.
문무왕은 아버지인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발해와 신라 양국시대를 만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왕이었지만 동해안과 남해안으로 몰려오는 왜구들로 인해 백성들이 수난을 당했다.
이에 문무왕은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아들인 신문왕에게 유지를 내리니 효자였던 신문왕은 부왕의 명을 어기지 못하고 이곳 대왕암에 능을 만들었다
대왕암 가운데 넓은 공간에는 넓적하고도 큰 돌이 남북으로 길게 놓여 있는데, 길이 3.6m·너비 2.85m·두께 0.9m의 거북 모양의 화강암석으로 수면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 돌 밑에 어떤 특별한 장치를 해서 문무대왕의 유골을 봉안한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문무왕이 죽자 불교식 장례에 따라 화장하고 대왕암에 수중릉을 만들고 봉길해변으로 흘러내리는 대종천변에 감은사를 세우고 금당아래 동해를 향한 배수로를 만들어 용이 된 문무왕이 왕래할 수 있도록 하여 왕이 쉴수 있도록 하였다.
대왕암이 내려다보이는 북쪽 언덕위에 국가사적 사적 제159호로 지정된 이견대지에 이견대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신문왕이 서라벌을 떠나 왕의길을 따라 동해바다로 나아와서 부왕이 모셔진 대왕암을 바라보며 경배를 하는 장소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번지에 있는 이견대는 문무왕을 친견하러온 신문왕이 바다의 큰용이 된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이 해룡을 시켜 보낸 검은 옥대와 대나무를 받아 만파식적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만파식적은 죽어 바다의 용이 된 문무왕과 삼십삼천의 한 아들인 김유신공이 신라를 지킬 보물로 내려준 것으로 신문왕이 해룡으로부터 크게 이익을 얻었다는 뜻으로 주역의 "飛龍在天(비용재천) 利見臺人(이견대인)"에서 따왔다고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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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여행
문무대왕릉 - 국가사적 제158호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26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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