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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은행나무와 시원한 전나무숲길이 멋들어진 진악산 보석사와 영규대사 유적지 금산여행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2. 9. 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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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은행나무와 시원한 전나무숲길이 멋들어진 진악산 보석사와 영규대사 유적지 금산여행

천년은행나무가 마스코트 처럼 서있는 금산 진악산 보석사는 앞산에서 금을 캐어 불상을 조성하여 보석사라고 불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사찰로 천년은행나무로 이어지는 전나무숲길과 영규대사가 주석했던 흔적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보석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전나무숲길은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무성해서 대낮에서 어둠이 짙게 내릴정도여서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로 인해 피서여행을 따로 없을 정도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줘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가을이 오면 보석사 전나무숲길 사이 사이에 심어진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오색 단풍이 들어 푸르른 전나무와 노란은행나무 알록달록 단풍나무가 어울어져 오색의 향연을 만끽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별천지로 변한다.

 

 

일주문을 지나 전나무숲길을 올라가다보면 진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시냇물을 따라 이어지는 길옆으로 작은 나무다리 보이고 그 맞은편에 나무의 높이가 34m, 가슴높이의 둘레 10.72m의 크기의 천년 은행나무가 눈길을 잡아끈다

 

 

 

해마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대신제가 열리는데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된 보석사 은행나무는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다섯명의 제자와 함께 열반에 이르는 여섯가지 방법인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일컫는 육바라밀을 상징하기 위해 은행나무 여섯그루를 심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로 합쳐져 지금의 은행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보석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 사명대사와 함께 승군의 3대의병장으로 불리는 영규대사와 관련된 흔적들이 남아 있는데 일주문 바로 왼편에 자리잡은 승병장 영규대사의‘의병승장비’와 대웅전옆에 영규대사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기허각, 영규대사가 주로 머물렀다는 요사채인 의선각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는 승병 1천명을 규합하여 의병장 조헌관 함께 청주성 탈환하였으나 금산에서 1만5천의 왜군에 맞서 700명의 의병이 장렬히 싸우다 장렬하게 산화한 비운의 현장으로 칠백의총이 그날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통일신라 현강왕 12년(886)에 조구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천년고찰 보석사에는 사찰내에는 충남 유형문화재 제143호로서 지정된 조선시대 말에 건축한 보석사대웅전과 기허각, 의선각 등의 건물들만이 남아있지만 고즈넉한 사찰분위기가 천년세월을 지켜서 있다.

 

 

충청남도 금산여행지

금산 보석사 - 천연기념물 365호 보석사은행나무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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