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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여행 애국지사 남자현지사 생가지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0. 11. 1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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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계향의 음식디미방으로 유명한 영양군 두들마을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남자현지사생가지를 들어서면 나는 조선의 독립을 원한다라는 글귀가 적힌 남자현지사의 동상이 반긴다.

 

 

남자현지사는 일본 군대가 만주국 정부를 수립하고 만주국 전권 대사로 일본 육군대장 무등신의가 관동군 사령관을 겸하여 신경에 주재하던 193331일 폭탄을 던지려 신경 일본대사관에 잠입하던중 밀정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셨다.

 

 

남자현지사는 일본 영사과에 구금되어 5개월간 갖은 혹독한 형벌을 당했으며, 하얼빈 감옥으로 옮기게 되자. 왜경의 음식 차입을 일체 거절하고 말하기를 원수 도적을 토살하지 못하고 도리어 적에게 잡혔으니 다만 죽음이 있을 뿐이라하고, 단식투쟁 15일 만에 거의 죽은 몸이 되어 병보석으로 출감하였다.

 

 

남자현지사는 병보석으로 출감후 하얼빈시내 조선여관에서 교포들의 간호를 받다가 62세의 나이로 순국하셔서 한국인교포들이 힘을 모아 하얼빈 외국인 묘지에 사회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남자현지사에게 1962년 건국훈장대통령장을 추서하여 남자현지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념하였으며, 영양군은 남자현지사가 태어난 이곳에 1999년 생가 및 부속사를 복원하여 기리고 있다.

 

 

영양군 석보면 지경동에서 통정대부 정한공 남정한선생의 셋째 딸로서 1872(고종 9) 탄생하신 남자현여사는 19세에 의성김씨 김병주와 결혼하였으나 부군이 의병으로 참가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남편이 전사하자 영양군 수비면 계동으로 이사하여, 가난한 살림살이에 여사는 손수 길삼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3대 독자이며 유복자인 어린 아들 김영달을 키우면서 47세에 기미년 3.1운동에 적극 참가하였다.

 

 

남자현여사는 3.1운동 참가로 일본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망명해 서로군정서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각 단체와 군사기관을 돌아다니고 농촌의 개발과 계몽에 노력하는 한편 북만주 일대 12곳에 예수교회를 창설하여 복음을 전도하고, 10여개소의 여성 교육기관을 세워 여성계몽과 독립운동에 힘썼다.

 

 

남자현지사 생가지

경북 영양군 석보면 석보로 208

전화 054-680-6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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