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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힘차게 밟고 돌아 세계문화유산 고인돌 찾아가기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8. 6. 25.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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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산9번지에 위치해 있는 고창읍성은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불리는데

조선 세종 32년(1450)에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외침을 막기 위해

 축성을 시작한 자연석 성곽이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고창읍성의 축성연대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고창읍성의 관아건물 보수시에 나타난 상량문과 각종 문헌

 및 성돌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면 이 성은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단종 원년(1453)까지 전라좌우도 19개 군·현

에서 구간별로 분담하여 축성한 흔적이 성벽 구간마다 각자(刻字)되어 있다.

고창읍성에 전해져오는 민속놀이에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병이 없이 오래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

한다는 유래가 있어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번 돌아서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는 성벽 밟기 행사가 매년

 계속되고 있다.

성을 한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바퀴 돌면 극락승천 한다고  전해져 오는데 이는

성곽 보수를 겸한 성벽다지기의 일환으로 진행된 공역에 군민들을 자연스럽게 참여시키고 신명을 높이기 위한 방편

 이용한 조상의 슬기를 엿볼 수 있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3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제일 좋다고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고 있음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게 하기 위함 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함으로서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

 하는 의도에서 였을 것이다.


성밟기를 한 후 머리에 이고 온 돌을 일정한 지역에 쌓아놓게 한 것은 유사시 석전(石戰)에 사용하기 위한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유비무환의 정신이 깃들었다 할수 있을것이다.

 

고창읍성에서 나와서 북서쪽방향으로 10km 정도 가다보면 BC 4~5 세기경 조성된 동양 최대의 고인돌 집단

군락지인 고창읍 죽림리 · 상갑리 고인돌군을 만나 볼수 있다.

  고창 고인돌군은 죽림리 매산 마을 산줄기의 남쪽 기슭을 따라 표고 15~50m의 범위 내에 군을 이루며 등고선을

 따라 동서로 약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되어 있고 지정 보호구역의 면적은 573,250㎡이다.

죽림리 및 상갑리 일대의 고인돌은 1965년 국립박물관에 의해서 3기가 발굴 조사된 이래 1990년 전라북도와

원광대학교의 주관으로 3개월에 걸친 현지조사에 의해 447기가 조사되었으며, 파괴 매몰된 108기를 합하면

550여기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조사이전의 파괴된 기수를 합하면 대략 1,000여기 내외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밀집분포는 우리나라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며,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밀집된 것으로서

한반도의 청동기시대 묘제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혈연으로 이어지는 집단이 형성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선사시대의 정신, 문화, 생활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고창 고인돌유적은 94년 12월 21일 사적 제 391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에는 경주역사유적지구와 ·화순·강화

 고인돌유적과 함께 고창 고인돌 유적도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등재되어 문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고창 고인돌은 몇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형식을 자랑하고 있는 고인돌에서는 우리 선조들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으며, 고인돌을 축조한 기술은 현대과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정밀한 기술이다. 또한 고창 고인돌의

조밀한 분포는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

이다. 고인돌이란 말은 순 우리말이며 그 말은 남방식 고인돌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고인돌이란 말은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을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라 하며, 돌맨(DOLMEN)이나

거석(megalithic culture)이라고도 불린다.

인류가 거석을 이용하여 구조물을 남기게 된 것은 거석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에 바탕을 둔 것으로

 생각된다. 즉 거석에는 정령이 있으며 이 같은 정령에 의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될 수도 있다는 인식이 거석을

 숭배하게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거석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 또는 거석을 숭배하는 것을 만물숭배신앙(Animism)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선돌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거석문화의 한축이다. 한반도 전체 고인돌의 숫자는

 약 36,000여개가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자료 참조]

http://www.gochang.go.kr/


[주변맛집] 

< 산장회관 > - 풍천장어구이 (1인분 15,000원)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86-8 (063-562-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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