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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탕물을 뒤집어쓴채로 모습을 드러낸 국보제285호 울산반구대암각화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9. 3. 3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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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연고산의 한 자락이 뻗어 내려온 산세가 굽이굽이 계곡을 만들면서 기암괴석과 어울어져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내는 경승지가 있다.

두동면 천전계곡(川前溪谷)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옥류가 이 곳에 모여 호반을 형성하니 절승가경

(絶勝佳景)으로 이름이 높다. 그래서 옛날부터 경향 각처의 시인묵객들은 이 곳을 찾아 시를

 지으며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마치 거북이 넙죽 엎드린 형상이라 하여 반구대(盤龜臺)라 불리는 이곳에는 선사시대에 이지

역에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반구대 암각화가 있어 더욱 유명한 곳이다.

 울산 광역시 언양읍 대곡리 산234-1번지에 위치한 반구대암각화는 국보 제285호로 지정될정도로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고 중요한 유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10m의 ‘ㄱ’자 모양으로 꺾인 절벽암반에 여러 가지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신비감을 갖게 해주는 곳이다.

 암각화란 선사시대 사람들이 자신의 바램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커다란 바위 등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그림을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암각화는 북방문화권과 관련된 유적으로 우리민족의 기원과

 이동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그러나 이중요한 유적이 울산공업단지가 설정된 후인 1960년대 중반 공업용수를 위하여 범서읍

(凡西邑)사연(泗淵)지역을 흐르는 반구천(盤龜川)의 하류를 막아 1965년 완공된 사연댐으로

 인해  물속에 잠겨 수중암각화가 되고 말았다.

 

 

 

 갈수기에는 사연댐의 물이 줄어들어 암각화의 모습을 대할수 있는데 흙탕물을 뒤집어 쓴채로

 모습을 들어내어 모습을 알아볼수도 없고 그 훼손이 어느 정도로 진행되는지 알수가 없어서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내가 이곳을 찾아간 날도 가뭄이 심해 사연댐의 수량이 줄어들어 상류지역인 이곳도 물이

거의 없어서 반구대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를 볼수 있었는데 물속에 잠겨 흙탕물을 뒤집어쓴채로

 모습을 드러내어 암각화의 형상을 알아 볼수가 없었다.

문화재청은 31일 오후 3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울산시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의 보존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한다고한다.

주제발표문은 반구대 암각화의 가치 재조명(이상목 울산 암각화 전시관 박사), 반구대 암각화

 암석 특성과 훼손 상태 분석(도진영 경주대학교 교수), 반구대 암각화 암벽의 풍화 및 구조적

 안정성 분석(문종규 동명기술공단 부사장), 반구대 암각화 훼손현황 및 보존방향(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터널형 수로 변경안(김기수 울산시

 문화체육국장), 사연댐 운영수위 조정 및 대체수원 확보 방안(이원식 국토해양부 수자원 개발

과장) 등의 주제로 공청회가 열린다고 하니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바랄뿐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앞에 세워진 안내판에 사진을 보면 반구대 바위에는 육지동물과 바다고기,

 사냥하는 장면 등 총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볼수가 있다.

 육지동물은 호랑이, 멧돼지, 사슴 45점 등이 묘사되어 있는데, 호랑이는 함정에 빠진 모습과

새끼를 밴 호랑이의 모습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멧돼지는 교미하는 모습을 묘사하였고,

사슴은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바다고기는 작살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 등으로 표현하였다.

사냥하는 장면은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을 묘사하였으며, 그물이나 배의 모습도 표현하였다.

이러한 모습은 선사인들의 사냥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기원하며, 사냥감이 풍성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바위에 새긴 것이다.


조각기로 쪼아 윤곽선을 만들거나 전체를 떼어낸 기법, 쪼아낸 윤곽선을 갈아내는 기법의 사용

으로 보아 신석기말에서 청동기시대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점을 이용하여 동물과

 사냥장면을 생명력있게 표현하고 사물의 특징을 실감나게 묘사한 미술작품으로 사냥미술인

동시에 종교미술로서 선사시대 사람의 생활과 풍습을 알 수 있는 최고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신라 때는 화랑들이 명산대천(名山大川)을 찾아다니면서 고귀한 기상을 기르고 심신을 단련

하던 때에, 이지역에 와서 훈련하고 야영생활을 했으며, 또 고려말의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 조선초기의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한강 정구(寒岡 鄭逑) 등 삼현이 이곳에서 명시를

 남기고 향민들을 교화 하였다. 그래서 반구대 아래의 소구(小丘)인 포은대(圃隱臺)에는 이

 삼현의 행적을 기록한 반고서원 유허비와 포은대 영모비가 세워져 있고 또 맞은편에는 중창한

 반구서원이 있다.


 

[관련자료]

http://www.cha.go.kr/

http://guide.ulsan.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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