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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달집태우기를 아름다운 3층목탑이 있는 진천 보탑사에서 만나다.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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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달집태우기를 아름다운 3층목탑이 있는 진천 보탑사에서 만나다.

정월대보름이 전에 이곳저곳 행사하는곳이 있다고 해서 어떤곳을 가볼까 하다가 비구니스님들의 원력으로 현존하는 삼층목탑중 52m로 높이의 세계최대의 목탑이 세워진 진천보탑사앞에서 펼쳐지는 달집태우기를 찾아보기로 했다.

 

 

달집태우기는 달맞이·횃불싸움과 같이 정월 대보름에 전해져오는 우리나라 전통의 민속놀이이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민속신앙인 산신각을 세우고 산신을 모시듯이 우리전통 세시풍속도 불교행사로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어 정월대보름이면 각사찰에서도 다양한 대보름 행사가 열린다.

 

 

 

달집태우기는 보름달이 떠오르기 전에 나무로 틀을 엮고 짚을 씌운 달집을 달맞이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나 달집태우기를 하는 장소의 중심지점에 세우고 각자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단다.

 

보탑사에서도 정월대보름전에 달집을 세우고 이곳을 찾는사람들에게 소원을 적은 종이를 매달수 있도록 준비를 하여왔다.

 

그리고 정월대보름날인 2월28일 오후에 많은 신도들이 운집한 가운데 달집태우기 행사를 가졌다.

보탑사스님들과 신도대표가 횃불을 들어 달집에 불을 붙이자 신도들의 소원종이가 불과 만나 불꽃을 환하게 피어올렸고 그옆에서는 풍물을 신나게 울렸다.

 

 

달집을 태울때 절을 하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고, 1년간 부스럼이 나지 않고, 한꺼번에 불이 잘 타오르면 풍년이 든다고 하니 농사를 천하의 대본으로 알았던 우리조상들의 소원이 전해져오는 세시풍속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비구니스님들의 원력이 그대로 전해지는 20세기의 국보 진천 보탑사

충북 진천 진천읍 연곡리 483번지 보련산 자락에 자리한 보탑사(寶塔寺)는 1996년 창건한 연륜이 길지 않은 사찰이다.

그러나 천년고찰이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12년 역사로 당당하게 그 이름을 내밀수 있는 것은 걸어서 내부를 올라 갈수 있는 세계유일의 3층목탑을 21세기에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화마에 불타지 않았다면 세계최고의 목조건물이라 불리었을 황룡사지 9층목탑의 살아있는 후신이 바로 진천 보탑사 3층목탑이라고 할수 있다.

  

보탑사라는 사명의 유래는 법화경 견보탑품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법문을 다보여래께서 증명하고 찬탄하기 위해 칠보탑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여주셨는데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보배탑을 세움으로서 모든 사람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심어주는 자비심이 가득차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뜻에서 정해졌다고 한다.  

진천보탑사 3층목탑이 의미를 갖는 것은 우리나라의 사찰의 천문학적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큰절이나 비구스님(남승)들이 아니라 수입도 별로 없고 힘도 없는 비구니스님(여승)들의 내놓은 단돈 5,000만원의 종자돈으로 이어마어마한 불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진천 보탑사는 서울 돈암동에 삼선포교당을 짓고 삼선승가대학을 건립한 비구니 지광스님과 묘순스님, 현주지 능현스님의 원력이 만들어낸 이시대의 보물이다.

세분 스님과 상좌스님들은 학생들이 편안하게 수련하고 신도들이 마음놓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원력으로 전통양식으로 사찰을 건립할 계획을 세웠다.

 

 

1989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보탑사 공사가 시작된 것은 1991년 부터다. 91년 터를 닦고 92년 삼선포교원 지광스님이 내어놓은 단돈 5,000만원을 가지고 단지 우리건축문화를 되살리기 위한 뜻하나로 모인 시대의 장인들이 공사를 시작하고 회의 장소를 제공하고 거액의 건축비를 선뜻 보시했던 국시집 사장 이옥만보살 등 수많은 불자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96년 3층목탑을 완공했다. 그리고 종각과 법고 등 주변 조성 불사가 모두 끝난 것은 10년도 더 지난 2003년이었다.

 

우리한옥 건축 그것도 사찰건축물은 평당 건축비가 7~9백만원이 훨씬 넘는 것이 일반적인데 5,000만원이라면 10평짜리 한옥짓기도 빠듯한 액수라고 생각하면 믿음과 희생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불사였다고 밖에는 달리 표현 할길이 없는 대단한 업적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삼선포교원(서울 성북구 동선동3가 255번지 / 02-922-9652)을 세운 지광 스님은 우리나라 비구니(여승) 포교사 1호 자격증소지자로 1978년 신도들과 함께 25평짜리 월세방을 얻어 처음 포교당을 열어 24개월만에 서울 삼선동 도심 한 가운데에 국보 30호인 분황사 모전석탑을 모델로 한 탑주 양식의 3층짜리 대형 포교당을 세웠다.

분황사 모전석탑을 본뜬 포교당을 세운 삼선포교당에서 황룡사9층목탑을 3층높이로 재현한 진천보탑사 3층목탑을 세운것은 우연이 아니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진천보탑사 3층목탑 높이는 42.71m. 상륜부 9.99m를 더하면 총 높이는 52m가 넘는다. 14층 아파트 높이와 맞먹는다. 떠받치고 있는 기둥만 모두 29개이다.

현존하는 3층목탑중 세계최대의 탑이라고 할수 있다.

3층목탑의 1층 법당에는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휘돌아 불단에 올린 수박을 동지기도가 끝나면 팥죽과 함께 대중공양을 할 정도로 수박 속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니 보탑사의 건축기법이 신묘하기 그지 없다 할것이다.

 

진천보탑사를 사람들이 ‘20세기 국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시대를 함께 살았던 최고의 장인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낸 최고의 걸작이기 때문이다.

진천 보탑사 3층목탑이라는 시대의 예술품을 만들어낸 당대의 장인들은 도감을 맡아 20~30년 경력의 목수 14명과 함께 강원도산 소나무만을 사용하여 단한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의 연결하는 전통방식으로 작업하면서 진행과정을 샅샅이 기록하고 남긴 신영훈한옥문화원 원장, 보탑사 처마곡선을 살린 대목장의 맥을 이은 당대 최고의 조희환 도편수, 삼층 목탑을 설계한 태창건축 박태수 소장, 문짝을 만든 심용식 소목장, 상륜과 금속물을 제작한 최교준 야철장, 장엄을 도맡은 이진형 조각장, 조선 단청의 계맥을 이어 60평생을 한 길에 매진한 단청을 맡은 한석성 화사, 999기 백자탑을 조성한 이화여대 조정현 교수, 이들을 총 지휘, 공사를 시공한 김영일 가산건설회장이다.

 

지금까지는 현존하는 건물중 내부에서 계단을 통해 상층으로 올라갈수 있는 목탑은 전 세계에서 중국 태원 불궁사 응현목탑이 유일했으나 보탑사 3층목탑도 계단으로 연결해 오를 수 있도록 건축되었으며 층별로 사방으로 문을 내고 난간과 함께 마루를 만들어서 1층, 2층, 3층에서 탑돌이를 할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목탑으로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높이 30m.5층)은 밖에서 볼때 5층 형태이지만근정전 같이 내부는 통층 구조로 되어있고 금산사 미륵전화순 쌍봉사 3층목탑은 3층이나 올라 갈수 없는 구조 이다.

 

보탑사 3층목탑의 1층 금당에는 4개의 출입문이 있는데 출입문 상단에는 각각 대웅보전 극락보전 적광보전 약사보전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고 1층에 금당안으로 들어가면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심주를 중심으로 보탑의 중심축인 네 기둥 사이 사이에 남방(南方) 석가모니불, 서방(西方) 아미타불, 북방(北方) 비로자나불, 동방(東方) 약사불 등 사방불을 모셨다.

그리고 각 부처님의 좌우를 두 보살이 협시하고 있고 중앙 찰주에 999기의 백자 소탑이 서있어 본체인 3층목탑하고 합치면 1,000개의 탑이 조성되어 있는 것이다.

 

1층 금당에서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두군데가 있는데 서편 층계에는 ‘연꽃을 밟으며 이상세계로 들어가라’는 스님의 배려가 담긴 연꽃이 새겨져있다.

보탑 외견은 3층인데 반해 내부는 층간의 반자와 지붕 사이공간을 암층으로 둔 5층이고 탑신 1층 둘레는 14m이며 모두 85개의 소나무 기둥이 탑을 떠받치고 있다.

이 탑은 특히 8t 트럭 1백50대 분량의 목재를 사용하면서 단 하나의 못도 사용하지 않았다.

 

2층은 법보전은 불, 법, 승 3보중의 법보, 즉 석가세존의 가르침인 경전을 봉안하는 법당으로 가운데 윤장대를 두고 법화경 석경을 봉안했다. 윤장대에 8만 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17만 자의 한글법화경을 총 9톤 무게의 돌판에 나눠새겨 봉안했다.

1∼2층간 암층은 봉해졌다. 2∼3층간 암층은 보탑사와 우리나라 전승탑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3층 미륵전(彌勒殿)은 석가 세존께서 열반에 드신뒤 장차 이땅에 새로운 정법(正法) 시대를 여실 미래불인 미륵불을 모시는 법당이다. 광배(光背)를 한 미륵불과 협시보살인 법화림 보살, 대묘상 보살이 모셔져있다.

원래 부처님은 광배를 하고서 법당 중앙에 안치됐으나 임진왜란 이후 광배가 없어지고 부처님은 법당 벽면으로 옮겨졌는데 보탑사 3층목탑 미륵전에서 사라진 전통을 다시 복원한것이다.

 

신라가 통일국가를 염원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웠듯이 남북통일은 물론 옛 고구려 땅까지도 통일하려는 염원을 이 탑은 담고 있어 진천 보탑사 3층목탑을 통일대탑이라고도 부른다.  

진천보탑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탑사를 올려보면 사찰 입구에 종각과 법고를 매단 법고전이 자리를 잡고 그가운데를 계단이 조성되어 있어 천국으로 오르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지장전 오른쪽으로 난 아름답게 꾸며진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통나무에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의 산신각이 조성되어 있어서 전통을 살리면서도 자연과 어울어지는 정갈한 사찰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비구니스님들의 정성이 엿보인다.

 

3층목탑 왼편에는 영산에서 500명의 비구들에게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영산전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편 법당에는 와불상이 모셔져 있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의 분위기도 정갈하고 깔끔한 분위기 그대로이다.

 

진천읍 상계리 연곡리는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의 국경지대로 상계리 계양마을의 담안밭에 흥무대왕 김유신의 탄생지가 있으며 만뢰산에는 태령산성 , 만뢰산성이 있고 현재 보탑사가 있는 연곡리에는 큰절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증명하는 유물로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백비를 연곡리 논 가운데에서 발견하여 보물404호인 진천연곡리석비(석재:화강암 /높이 3.6m )로 지정하고 보탑사 왼쪽 뒷마당에 보존하고 있다.  

진천연곡리석비에는 글씨가 쓰여지지 않았으며, 또한 비의 주인공도 확인할 수 없어 일명 백비(白碑)라고 불려 더욱 유명한 비석이다. 처음부터 비문을 새기지 않은 것인지 지워버린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비머리에도 네모진 비의 이름을 쓰는 자리만 마련되어 있을 뿐 글씨는 없다.  

받침부분은 비몸돌과 머리부분을 지탱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으로 거북머리의 모양을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말(馬)의 머리에 더 가깝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은 얼굴면이 손상되어 말머리같이 되었으며 앞 발톱이 파손되었다. 등 무늬(龜甲紋)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단아한 느낌을 주고 비몸을 받치는 받침부분의 연꽃무늬는 잎이 작으면서도 양감이 있어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귀부(龜跌) 위에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이首)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이수는 아홉 마리의 용(龍)이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형태이다.

잘 다듬어진 비신과 반결구룡(蟠結九龍)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이수는 우수한 조각품이다. 이 석비는 거북모양 받침돌의 머리 형태와 비의 규모에 비해 얇은 몸, 옆으로 긴 네모꼴의 비머리형태 등 조형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高麗) 초기(初期)의 석비(石碑)로 추정되고 건립 연대나 양식상 월광사 원랑선사비와 비교되는 작품이다.

 

[관련자료 참조]  

http://jincheon.go.kr/  

http://korean.visitkorea.or.kr/  

http://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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