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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여행]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애월읍 용천수 유수암천과 팽나무군락

제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7.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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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여행] 슬픈 이야기가 전해오는 애월읍 용천수 유수암천과 팽나무군락

제주도 여행 중에 찾게된 유수암천은 제주시 애월읍 한라산 자락 해발 200∼250m 높이에 위치한 중산간 마을인 유수암리 마을의 생명수였던곳이다. 

 

 

 

유수암리 마을을 형성했던 두마을의 옛이름인 흐리믈과 검은데기에서 알수 있듯이 우물이 있는 바위언덕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유수암천이 이마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절산 산자락에 자리잡은 바위틈을 비집고 용솟음쳐 올라오는 용천수인 유수암천과 관련하여 고려시대 슬픈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인생무상을 전해주고 있다.

 

고려 원종 12년(1271년) 항몽전쟁을 치르던 삼별초군이 항파두성에 웅거할 때 함께 따라온 한 고승이 절산 부근을 지나다가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용천수를 보고 김통정장군에게 이곳에 암자를 짓는것이 좋다고 하여 태암감당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고승과 김통정장군의 어머니와 처가 태암감당 암자에 머무르면서 삼별초군이 여몽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기를 기원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기도의 효험도 없이 삼별초군이 지키던 항파두성이 여몽연합군의 발아래 짓밟히고 김통정장군은 전사하고 말았다. 

 

김통정장군의 가족도 여몽연합군의 추적을 피해 태암감당을 나와 인근에 토굴을 파고 들어가면서 부하에게 토굴속에 불빛이 보이지 않으면 입구를 막고 무덤으로 만들라고 하였다고 한다.

 

얼마후 토굴속에 불빛이 사라지고 인기척이 없자 사람들이 토굴입구를 막고 무덤으로 만들고 종신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태암감당이나 종신당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고 우뚝선 절산(108계단)과 팽나무와 무환자나무만이 그 자리를 지켜서있다.

 

제주시시도기념물 제6호로 지정된 금덕무환자나무및팽나무군락지는 무환자1주와 팽나무19주가 유수암리 마을에서 108계단으로 오르는 절산 1920번지 주변에 스무그루가 자리잡고 있다. 

 

 

무환자나무는 자식에게 화가 미치지 않는다하여 무환자나무라 하며, 제주도에서는 도욱낭 또는 더욱낭으로도 불리고 있다. 열매는 염주를 만드는데 쓰였기 때문에 절이 세워진 후에 심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군락의 무환자나무는 베어졌다가 다시 싹이 나와 자라고 있는데, 원래는 둘레가 3m 이상 되는 큰 나무였다고 한다. 현재는 3개의 싹이 나와서 자란 것이 높이 12m, 둘레 1∼2m에 달하는 큰 나무가 되었다.

 

팽나무는 모두 9그루가 남아 있는데, 나이는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가장 큰 나무는 높이가 16m, 둘레가 6m 이다. 이 군락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쐐기풀도 많아서 사람이 다니기가 어렵다. 기념물로 지정된 팽나무 외에도 오래된 팽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전체가 아늑한 분위기이다.

 

 

그리고 절산에서 유수암천으로 지나 마을 북쪽 입구 길가에 왕돌 또는 왈돌목이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만나게 된다.

 

어림잡아 100여톤은 됨직한 이바위는 북쪽 길목에 버티고 서서 모든 잡귀와 괴질이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차단해주는 신암이라고 하여 귀하게 대접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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