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한을 품은 고려 태조 왕건이 세웠던 개국사찰 논산 천호산 개태사지
논산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국도변, 천호산(386m) 기슭에 위치한 개태사는 이규보 선생이 쓴 개태사 조전원문(이규보의 이상국집에 수록됨)과 《고려사》와 《여지도서》에 에 의하면 고려 태조19년(936)에 창건된 사찰로 왕건이 후백제를 평정하고 창건케한 국립 개국사찰이라고 나와 있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
개태사가 자리잡은 논산 천호산 일대는 삼국시대말 백제의 계백 장군이 5천 결사대를 이끌고 근처 황산벌에서 신라와 최후의 전투를 벌였던 장소로 유명하고 왕건이 후백제와의 승리를 이끈 중요한 전장터였고. 그후에도 군사·교통의 요충지로 주목을 받았던 곳이다.
기록들에 의하면 개태사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후백제를 평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약 4년간에 걸쳐 축조하여 태조 23년(940)에 완공하고 태조의 영정을 모신 전각이 세워진 국가도량으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에는 이곳에서 불공을 드리고 신탁을 받는 등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유지 되어 왔다고 한다.
논산시 연산면 천호리 개태사지 주변에는 6km에 달하는 토성이 있었고, 승병이 주둔하여 사찰을 수비하였다고 하니 당시 절의 규모와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개태사지는 논과 밭 그리고 담장에 깔려 있는 등 여기저기 유물이 흩어져 몰락한 나라의 아픈 흔적을 그래로 전해주고 있다.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청동반자는 국립부여박물관에 금동대탑(국보 제213호)는 리움미술관으로 흘러 나갔다.
2011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뉴스에서 조계종 산하 개태사(천호 개태사)가 국보 213호 금동탑을 돌려달라며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낸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금동대탑’ 소유권을 둘러싼 대법원까지 올라간 소송이 기각되고 삼성문화재단(삼성리움미술관) 승소로 법정 분쟁종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국보 제213호로 지정된 금동탑(金銅塔)은 현재 높이만도 155㎝로 제법 큰 규모이다. 더구나 현재 남아있는 탑신은 5층이지만 원래는 7층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고, 머리장식의 일부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원래 높이는 지금보다도 더 높았을 듯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금동탑은 대개 높이가 20∼30㎝ 정도이고, 50㎝가 넘는 것이 극히 드문것에 비해서 세배가 넘는 크기이기에 금동대탑이라고도 볼린다. 이 금동대탑 하나만 보더라도 그당시 개태사의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정도이다.
하지만 개태사는 고려의 개국과 동시에 세워졌 듯이 고려 패망과 함께 몰락해 그 흥망을 같이 한 사찰로 지금은 개태사가 자리잡았던 터만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한곳이다.
개태사는 전성기엔 천 여명의 승려가 상주하여 화엄법회를 갖는 등 승려 양성도량 역할을 담당하였고, 한때에는 8만9암자의 중추적인 도량으로 대각국사 의천의 장경불사를 다양한 국가적 행사가 열렸고, 국가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왕실이나 중신들이 호국기도를 드리던 고려시대 최대의 호국수호사찰 이었다.
그 후 고려 우왕 2년부터 14년까지 3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으로 방화 약탈되을 당하고 박인계장군(원수)이 왜구와 이곳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개태사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개태사가 자리잡은 위치는 세종 10년(1428)에 옮겨진 것으로 이마저도 폐사하여 이후 5백 여 년 동안 폐사된 채 내려오다가 1934년 김광영불자가 매몰되었던 미륵삼존석불과 발굴하고 5층탑을 세워 개태도광사라 칭하였다.
지금의 개태사 경내에는 미륵삼존불상(보물 제 219호)과 5층 석탑, 개태사 철확 등이 남아 있다.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개태사철확은 개태사 주방에서 사용했다고 전하는 철로 만든 대형 솥이다.
전성기에 장국을 끓였다고 전해지는 이 쇠솥은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에 이를 정도여서 수백명의 승려가 기거했다는 전설을 사실로 뒷받침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절이 없어지면서 벌판에 방치된 채 있던 것을, 가뭄 때 솥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비가 온다고 하여 여러 곳으로 옮겼다가, 일제시대 때 서울에서 열린 박람회에 출품된 후 새로 건립한 지금의 개태사에서 보존하고 있다.
내가 답사를 갔을 때는 문화재자료 제275호로 등록된 개태사지 석조는 개태사지 올라가는 길가 개인집의 담장 아래 깔려서 아픈 신음을 토하고 있었다.
문화재 자료로 등록하면서도 담장을 그대로 둔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재 관리실태의 실상이 아닌가 하여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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