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의 하여가에 단심가를 불러 충절을 지킨 고려말 충신 정몽준을 모신 임고서원
조선 태종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하여 답가로 단심가를 불러 충절을 지킨 고려말 충신인 포은 정몽주를 모기 위해 조선 명종8년(1553)에 세운 서원으로 명종10년(1555)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고서원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선조36(1603)에 현재의 위치에 중건되어 인조 21년(1643) 여헌 장현광선생을 배향하고 정조11년(1787)에는 지봉 황보인 선생을 추향하였다
그러나 고종 5년(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5년 복원하여 포은 선생만 봉향하고 있으며 1990년부터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여 기존의 서원 옆에 새로이 서원을 세워 웅장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임고서원 누마루에 올라서면 이방원의 하여가에 답해 지은 단심가가 편액이 걸려 있어서 정몽주의 충절을 되새기게 한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포은 정몽주선생은 고려충숙왕6년(1337) 임고면 우항리에서 일성부원군 운관의 아들로 태어나 공민왕 9년(1360) 문과에 장원, 예문검열 등을 거쳐 성균대사성, 전법, 판도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고려말의 충신인 삼은의 한사람으로 기울어져 가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였으나 공양왕 4년(1392) 조선 태종이 된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포은 정몽주의 고향인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번지에는 공양왕 원년(1389)에 포은의 효성을 기리는 “효자리”라 새긴 비가 세워졌다.
조선 성종때 경상감사 손순효의 현몽에 의하여 잃었던 비를 땅 속에서 찾아내어 다시 세우고 비각도 함께 건립하였다. (포은정몽주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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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고서원
도지정문화재 기념물62호(85.10.15)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462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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