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정권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를 발표한 저항시인 조태일시문학기념관 곡성여행
구산선문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곡성태안사를 올라가는 산길에서 오른쪽을 갈라지는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1941년 9월 30일 이곳 태안사에서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나 서슬퍼런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를 반대를 하는 시를 발표하면서 옥고를 치르던 저항시인 조태일시문학관이 자신의 자작시 “ 풀씨”처럼 고향 그 자리에 자리잡고 있다
-풀씨-
풀씨가 날아다니다 묻히는 곳
그곳이 나의 고향
그곳에 묻히리
햇볕 하염없이 뛰노는 언덕배기면 어떻고
소나기 쏜살같이 꽂히는 시냇가면 어떠리
온갖 짐승 제 멋에 뛰노는 산 속이면 어떻고
노오란 미꾸라지 꾸물대는 진흙탕이면 어떠리
풀씨가 날아다니다
멈출곳없이 언제까지나 따라다니는 길목
그곳이면 어떠리
그곳이 나의 고향
그 곳에 묻히리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이라는 현판이 새겨진 기념비를 중심으로 장승과 큰 돌기둥이 길을 지켜선 왼쪽으로 난길을 따라 내려가면 왼편에 시집전시관과 오른편에 조태일시문학전시관이 마주보고 자리잡고 있다.
1962년 광주고등학교, 1966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조태일시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경희대학교 재학시절인 1964년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아침선박”으로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1969년 김지하, 양성우, 김준태 등의 시인을 등단시킨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했으나 창간 1년여 만에 당국의 압력으로 폐간되었고 1974년 고은, 백낙청, 신경림, 염무웅, 박태순, 황석영, 조해일 등과 함께 민족문학운동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창립하였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7년 9월 17일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모체가 되었고 조태일시인은 1994~98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회장, 1998년 이후로는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으로 활동했다.
1989년에는 고향인 곡성이 있는 인근의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조교수로 임용되어 1994~99년 예술대학장을 역임하였으나 즐겨하던 술과 담배로 인해 1999년에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소주에 밥을 말아 먹는 시인'으로 불릴 만큼 술과 담배를 즐겼던 조태일 시인은 남성적이고 힘있는 시를 남겼는데 1995년 발표한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로 제1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조태일시인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1970년 발표한 시집[식칼론]을 비롯해서 , 1975 [국토]창작과비평사, 1980 시론집 [고여 있는 시와 움직이는 시] , 1983 [가거도] 창작과비평사, 1987[자유가 시인더러] 창작과비평사, 1991[산속에서 꽃속에서] 창작과비평사, 1995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창작과비평사, 1999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창작과비평사 등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94 [시 창작을 위한 시론], 1995[시인은 밤에도 눈을 감지 못한다], 1999[알기 쉬운 시 창작 강의], 1998[김현승 시정신 연구] 등을 저술하고 1991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2년 편운문학상을 수상하고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전라남도 곡성여행지
조태일시문학전시관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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