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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여행 한말 개화당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선생을 모신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김옥균선생유허지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7. 2. 27.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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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여행 한말 개화당과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선생을 모신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김옥균선생유허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143 영인면 아산리 143번지에 자리잡은 김옥균선생유허지는 유적건조물과 문신의 예를 갖춘 물상을 비롯한 봉토묘 형태의 무덤과 기념비 그리고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충달공 이라는 시호를 받은 김옥균 선생은 조선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김병태의 아들로 출생하여 고종 9년(1872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호조참판에 이르렀다.

 

1870년대부터 유홍기(유대치) 오경석 박규수로부터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김옥균은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일본을 돌아 본 후 개화당을 조직하고 청년들을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면서 국가 개혁방안을 도모하였다

 

청나라부터의 자주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기 위하여 박영효, 홍영식 등과 모의하여 1884년 12월 4일 우정국 개업식 연회에서 홍역식과 민씨 일가를 비롯한 수구파를 제거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청군의 진압으로 3일만에 실패로 돌아가 삼일천하로 불린다.

갑신정변 실패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10년을 방랑하던 김옥균은 1894년 3월 28일 상해 동화양행에서 수구파가 보낸 암살범 홍종우에게 암살되어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김옥균은 갑오개혁으로 개화파가 정권을 잡은후 서광범과 김홍집의 상소로 죄가 사면되었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이라는 벼슬이 주어졌으며 충달이라는 시호를 받고 일본 청산 외인묘지에 있던 의발을 수습하여 1914년 9월 11일 정경부인 유씨와 아산 유허지에 합장되었다.

아산만방조제에서 39번 국도를 따라 아산방면으로 가다가 아산교차로에서 아산온천가는 길목인 영인산 자락에 김옥균선생 유허지인 김옥균 선생을 모신 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개화당의 주역으로 한말 3일천하라고 불리는 갑신정변의 주역이었던 고균 김옥균 선생의 유허지는 비교적 늦은 시기인 1976년 6월에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충청남도 아산 문화재

충청남도 기념물 제13-1호 김옥균선생유허지

주소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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