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문경 선열 7현을 배향한 근암서원과 홍언충의 청산재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1. 8. 18. 16:46

본문

728x90

조선 중종 39(1544)에 신숙주의 손자로 상주 목사로 있던 신잠이 당시 상주목 관할이었던 문경시 산북면에 지역민의 교육을 위해 근암서당을 건립하면서 근암서원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근암서당에서 글을 배우던 학생들과 지방유림의 공의로 효종41653년에 이지역의 유학자로 1508년에 세상을 떠난 우암 홍언충을 배향하는 사당인 향현사의 건립을 상주목사에게 청원하였다

 

 

부사를 지낸 전명룡 등이 현종51664년 우암홍언충을 배향하고자 한다는 정문을 올려 건립이 승인되어 현종61665년 사당이 건립되어 향현사라고 칭하고 우암 송언충을 배향하였다

 

 

현종101669년 향헌사를 근암서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한음 이덕형 선생을 추가로 배항하기 시작하였고 숙종281702년 사당 김홍민, 목재 홍여하를 추가로 배항하였다.

 

 

숙종451719년 근암서원에서 우암집을 발간하였고 영조51729년 명륜당을 중수하고 정조101786년 활재 이구, 식산 이만부, 청대 권상일선생 등을 배향하면서 7인의 선열을 배향하였다.

 

 

 

근암서원은 고종5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9년 사림과 후손들의 결의로 근암서원 복원을 결의하고 1982년 사당 강당을 준공하고 봉안고유제를 지내었다.

 

 

근암서원 중건추진위원회를 200612월에 창립하고 초대 회장으로 채대진회장을 옹립하고 20097월 근암서원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2년만인 20115월 근암서원 복원공사를 준공하였다.

 

 

근암서원은 내삼문과 전사청이 자리잡은 제일 안쪽에 7현을 모신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강학공간인 강당 서재 동재가 중심에 조성되어 있고 루문과 관리사가 자리잡고 있다.

 

 

근암서원이 소장해오던 유물은 20061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7호 문경근암서원소장유물이라는 명칭으로 4843점이 일괄 지정되었는데 목재 홍여하, 우암 홍언충, 청대 권상일의 문집목판과 청대 권상일의 교지, 첩지, 영지가 70여점이 포함되었다.

 

 

문경 근암서원

경북 문경시 산북면 금천로 351-5

 

 

근암서원의 탄생 배경이 된 우암 홍언충을 모시는 청산재가 근암서원 남쪽 11km 지점에 자리잡고 있는데 2005620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83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청산재는 근암서원에 배향된 우암 홍언종을 모시는 재사로서 건물의 양식으로 보아 처음부터 재사 용도의 건물로 사용된 것 같지는 않고 정자 서당 등의 용도로 사용되다가 후대에 재사로 사용 한 것으로 보인다.

 

 

청산재는 재 정 당 사 등의 유형중에서 앞선 시기의 형태에 속하며 고식의 영쌍창 과 평면형식 등의 건축수법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18세기 이전의 건축물로 추정이 된다

 

 

근암서원에 배향된 우암 홍언충 선생은 대제학과 좌참찬을 지낸 연산조 직신 문광공 허백당 홍귀달과 어머니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나 연산11495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증광문과에 을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 정자·저작·박사, 질정관·부수찬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뒤 병으로 사임하였다.

 

수찬으로 1503년 복직하여 교리가 되고,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글을 올려 임금에게 간하다가 노여움을 사서 문외출송 되었다가 다시 진안에 유배되었고 아버지 귀달이 경원으로 유배될 적에 또 다시 해도로 이배되었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우암 홍언충은 문장으로 정순부, 이택지, 박중열 등과 함께 당대의 사걸이라 불렸으며 문경의 근암서원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 자만사가 있다.

 

 

청산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83

경북 문경시 영순면 청산재길 22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