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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국가사적 남원 황산대첩비 여행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2. 10. 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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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와 이성계 리더십센터에서 진행하는 전라북도 태조 이성계 역사탐방 팸투어에 참가하여 고려말 우왕 시대에 전라도와 경상도를 넘나들며 우리나라를 침탈했던 왜적을 토벌하기 위하여 이성계장군이 남원 황상에서 대승을 거두어 조선을 건국하는 기반이 마련한 황산대첩비가 자리잡은 남원 황산을 찾았다

 

 

고려말기에 일본의 정치·정세가 극도로 혼란하여 왜구들이 노략질을 위하여 우리나라를 침탈하였고 이를 물리치기 위하여 최영장군이 1375년 홍산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나 왜구들의 침탈은 계속 되었고 13808500여 척의 배를 타고 금강 어귀에 있는 진포(지금의 서천)지역을 침탈하였다

 

 

왜구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최무선은 군함에서 화포를 쏘는 대포를 개발하였고 진포에서 노략질을 벌이던 왜구들을 찾아서 최무선 나세 심덕부등의 지휘관들이 왜구들의 배들을 화포롤 격침하여 무도 불태우게 되었는데 배를 잃은 왜구들은 내륙지방으로 들어가 세를 펼치면서 노략질을 일삼게 되었다

 

 

고려정부에서는 경상도 상주 선산 경산부(지금의 성주)를 차례로 노략질하고 지리산 근방의 사근내역(함양)에서 진을 치고 있는 왜구들을 물아내기 위하여 이성계장군에게 토벌 명령을 내렸고 남원 운봉을 넘어 황산 서북쪽의 정산봉으로 나아가 수만의 왜구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이성계장군은 2천의 군사를 이끌고 2만이 넘는 왜구들과 전투를 벌이게 되었고 적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이성계가 날리고 이지란이 그뒤를 이어서 화살을 날려서 아지발도를 격퇴하여 수장을 잃은 왜군들은 지리멸려 흩어지게 되었고 이들을 쫒아가 대승을 거둔 고려군은 왜구의 말 1,600여 필을 비롯한 수많은 무기를 거두었다

 

 

삼봉 정도전을 문관으로 대동하여 전투에 참가한 이성계장군은 황산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황산을 오고가면 진안마이산에서 금척을 받고 임실 상이암에서 신인을 소리를 듣고 전주 한옥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오목대에서는 일가친적들과 지역유지들과 함께 대승을 축하하면서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을 밝혀서 유명해 졌다

 

 

이성계장군은 황산대첩에서 대승을 거두고 위화도회군 이후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였고 조선이 건국 되고 나서 1577(선조 10)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화수리에 높이 4.25m황산대첩비를 세워서 조선 건국이 반석이 된 황산전투의 대승을 소개하여 세상에 알렸다.

 

 

황산대첩비는 일제강정기에 우리나라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다양한 조선의 유적들을 파괴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지시로 황산대첩비도 파괴하도록 명령이 하달되었고 황산대첩비는 글씨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정으로 쪼아지고 대형망치로 파괴하여 황산 람천변에 버려지게 되었다

 

 

황산대첩비가 일제에 의해서 부셔져서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던 것을 한국전쟁이 끝난후 황산대첩비 탁본을 그대로 복원하여 1957년에 비문은 김귀영이 짓고 송인이 글을 쓰고 남응운이 전액을 만들고, 박광옥이 세우면서 황산대첩에 관한 사실과 비문을 세우게 된 목적 사정을 새겼다.

 

 

일제의 만행에 의해서 부셔진 황산대첩비 원본은 1977년에 보호각을 세우고 파비각 이라는 현판을 써서 보호하고 있어서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침탈하고 일제강점기에 또한번 조선을 침탈하면서 자신들의 치욕과 관련된 흔적을 지우고자 했던 일제의 만행을 보여주고 있다

 

 

황산대첩비는 1957년에 비문을 다시 새겨 그 자리에 세워졌고 비바람에 보호하기 위하여1973년에 보호각을 세우게 되었고 1963121일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으로 분뷰되어 28,593면적이 국가사적 제104호 남원 황산대첩비지 라는 명칭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복원된 황산대첩비 오른쪽에는 고종191882년에 운봉현감 이두현이 세웠던 화수산비각비가 황산대첩비와 함께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다가 황상대첩비을 복원하고 그다음해인 1958년에 황산대첩비사적비 라는 명칭으로 복원되어 황산대첩 전황과 비각 건립 취지가 새겨져 있다

 

 

황산대첩비가 세워진 오른쪽 산기슭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장군이 황산대첩이 본인 혼자만의 공이라기 보다는 여러 사람의 공으로 큰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하여 성지를 내렸고 그 내용을 석벽에 새긴 유적으로 황산대첩비가 일제에 의해서 파괴 되었을 때 일제가 폭파하고 철정으로 쪼아버려 현재는 잔영만이 남아서 1973년에 어휘각을 건립하여 보호 하고 있다

 

 

남원 황산대첩비지

국가사적 104

전북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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