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위치한 선운산(333m)의 주봉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이르는 말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선운산에는 절묘하게 솟은 암벽과 산봉우리 그리고 울창한 숲이 어울어져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하는
산자락아래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운사는 검단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89암자와 사찰이 선운산 골짜기에 들어서 불국토를 이루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선운사와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 등
4개의 암자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선운사에는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에, 벽의 양 측면에는 풍우를 막기 위해 널판으로 풍판(風板)을
대고 막돌로 허튼 쌓기를 한 얕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운
보물 제290호 선운사 대웅보전이 있다.
그리고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이 있는데 조선 초기의 금동지장보살좌상으로 높이는 1m이다.
머리는 고려시대 지장보살상에서 폭넓게 나타나는 두건(頭巾)을 쓴 모습이며, 두건을 묶은 좁은
띠가 이마를 두른 후 귀를 덮고 양 가슴부분까지 내려와 있다.
선운사지장보살좌상과 함께 그 예가 드문 지장보살상의 하나로, 조선시대 지장신앙의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불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지장보살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한 적이 있는데, 이때 영험함을 보인 사실로 인해 더욱 널리
추앙받고 있다. 1936년 어느 여름에 일본인 2명과 우리나라 사람 1명이 공모하여 보살상을 훔쳐간 뒤,
거금을 받고 매매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지장보살상이 영이(靈異)를 나타내기 시작하여, 소장자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그곳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하였다. 소장자는 다소 이상한
꿈으로만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후로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게 되자 꺼림칙한
마음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겨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이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으나 그 역시 이를 무시하였고,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게 되자 다시 다른 이에게 넘기게 되었다.
그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이 겪은 일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마지막으로 소장하게 된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고창경찰서에 신고하여 모셔갈 것을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당시 선운사 스님들과 경찰들이 일본 히로시마로 가서 모셔오게 되었는데, 이때가 도난당한 지
2년여 만인 1938년 11월이었다. 당시 잃어버린 보살상을 다시 모시고 온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찍은 사진
에도 사건에 대한 개요가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당시 주지는 '이우운(李雨雲)'으로 기재되어 있다.
선운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고승 검단(檢旦,
黔丹)선사가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하고 있다. 첫 번째 설은 신라의 진흥왕(재위기간 540∼576)이
만년에 왕위를 내주고 도솔산의 어느 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이때 미륵 삼존불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꿈을 꾸고 크게 감응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함으로써 이 절의 시초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왕이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시대적ㆍ지리적 상황으로 볼 때 진흥왕 창건설은 나당연합국의
침입으로 부여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진 것을 전해듣고 선운사를 겁난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고 검단선사의 창건설이 정설이다.
검단스님의 창건과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본래 선운사의 자리는 용이 살던
큰 못이었는데 검단스님이 이 용을 몰아내고 돌을 던져 연못을 메워나가던 무렵, 마을에 눈병이
심하게 돌았다. 그런데 못에 숯을 한 가마씩 갖다 부으면 눈병이 씻은 듯이 낫곤 하여, 이를 신이
하게 여긴 마을사람들이 너도나도 숯과 돌을 가져옴으로써 큰 못은 금방 메워지게 되었다.
이 자리에 절을 세우니 바로 선운사의 창건이다. 검단스님은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절 이름을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선운사를 창건할 즈음 이 지역에는 도적이 많았는데, 검단스님이 불법(佛法)으로 이들을 선량하게
교화시켜 소금을 구워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가르쳐주었다. 마을사람들은 스님의 은덕에 보답
하기 위해 해마다 봄ㆍ가을이면 절에 소금을 갖다 바치면서 이를 '보은염(報恩鹽)'이라 불렀으며,
자신들이 사는 마을이름도 '검단리'라 하였다. 선운사가 위치한 곳이 해안과 그리 멀지 않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염전을 일구었던 사실 등으로 미루어보아, 염전을 일구어 인근의 재력이
확보되었던 배경 등으로 미루어 검단스님이 사찰을 창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선운사를 나와 참당암/도솔암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와 민종호 종사관이
나왔던 선운산 녹차밭과 선운산 중턱에 조성해 놓은 꽃동산이 나와 산길을 걷는 이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선운사와 도솔암의 중간부분에 위치한 참당암은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올라가다보면 자연의집 앞에
있는 도솔계곡위에 설치된 다리를 건너서 봉두암(일명 투구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면 나온다.
참당암은 선운사의 암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으며, 지금은 산내암자로 사격(寺格)이 위축
되었지만 본래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리었던 거찰(巨刹)이었다. 삼국시대 의운(義雲)스님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의운스님이 도솔산 법화굴(法花窟)에
살고 있을 때 산 아래 죽포 포구에 돌배 한척이 들어왔다. 이 배는 속인들이 보려고 다가가면 바다로
멀어지곤 하다가, 의운스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포구로 나가서야 저절로 다가왔다.
이윽고 배에서 노를 젓던 한 금인(金人)이 나타나 여러 불상과 경전과 보인(寶印)을 스님에게 전해주고
"나는 우전국의 왕인데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 여러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던 중, 도솔사에 대참(大懺)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이 곳으로 왔으니, 청컨대 집을 짓고 편안히 모시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의운스님은 우전국 왕의 뜻을 깊이 새겨 581년(백제 위덕왕 28) 선운산 가운데 터를 잡고 '대참사'라 하였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시대에 1328년(충숙왕 15)부터 이듬해까지 중수가 있었으며, 1346년
(충목왕 2)부터 1398년(태조 7)까지 약 52년에 걸쳐 점찰신앙(点察信仰) 법회가 개설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법당 동쪽에 승당, 서쪽에 미륵전, 위로는 약사전, 아래로는 명부전등 여러 전각을 갖추어
조선후기 성종시대까지 독립된 사찰로서 번성하였으나, 성종대(1469~1494)이후 선운사가 산중의 중심도량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차츰 사세가 약화되었다. 현재 참당암의 전각은 대웅전과 약사전(藥師殿)·응진전
(應眞殿)·명부전(冥府殿)·도솔선원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물 제803호 참당암 대웅전은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매 칸마다 4분합문을 달았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다포양식의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양식인 반면 뒷면 공포는 굽면이 곡선이다. 석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으며, 1900년에 후불탱화로서
영산회상도를 조성하였다.
이 건물은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음에도 여전히 고려시대 건축 부재(部材)의 양식을 지니고 있어
이채로우며, 조선 후기의 빼어난 건축미를 지니고 있다.
약사전에 봉안되어있는 약사여래불상(실제로는 지장보살상으로 보아야 함)과 참당암 동종은 전북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산(도솔산) 도솔암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 280호 지장보살좌상이 선운산의 上지장보살이고 참당암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전북유형문화재 제33호 참당암 지장보살이 中지장보살이며 선운사에 모셔져 있는 보물 제279호인
금동보살좌상이 下지장보살로 선운산(도솔산) 전체가 도솔천내원궁의 지장보살 도량임을 알수 있다.
도솔암과 선운산 낙조대 천마봉 관련 글 -
http://blog.daum.net/tourcodi/?_top_blogtop=go2myblog
[자료 참조]
http://www.cha.go.kr/ - 불상사진
[주변맛집]
< 산장회관 > - 풍천장어구이 (1인분 15,000원)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86-8 (063-562-1563)
< 도솔암찻집 > - 오미자차, 솔바람차 (1인분 5,000원)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도솔암 입구
< 계화회관/부안이화자백합죽 > 백합죽(7,000원)
- 전북 부안군 행안면 신기리 211-2 / 063-58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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