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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조가 그렸다는 불화가 전해져오는 부안 능가산(변산) 내소사

전라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8. 9. 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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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전북 군산을 지나 서해바다를 향해 불쑥 튀어나온 부안 변산반도에 자리잡고

 있는 명승지 중 하나가 내소사이다.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속하는 내소사(來蘇寺)는 변산반도 해안가를 넘나드는 30번 국도를 타고 곰소만방향

 

 전북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268번지 능가산(변산:관음봉, 424m) 가선봉 아래에 터를 잡고 있다.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숨겨진 절경인 내변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내소사는 남으로는 서해바다와 염전지대를

 바라보고 북으로는 관음봉 뒤로 봉래구곡으로 이어지는 절경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내소사(來蘇寺)는 1363년 전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

했는데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다 했으나 지금은 소소래사인 내소사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소사가 과거에 ‘소래사(蘇來寺)’였다는 증거는 성종 17년(1486)에 간행된동국여지승람과 이규보

(李奎報)의 ‘남행일기(南行日記)’의 기록, 고려 인종 때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 실린 정지상

(鄭知常)의 시 ‘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 등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다만 언제부터 소래사를 내소사로

 불렀는지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내소사는 영화나 드라마 배경으로 많이 등장했는데 특히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여름에는 시원한 전나무길과

봄에는 꽃비가 내리는 벚꽃길이 유명하다.

내소사의 가람배치는 석축에 의해 상·중·하 3단으로 나뉘어지는데,

하단은 천왕문과 봉래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종각을 두었고,

중단은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설선당과 무설당을 두어 참선수도의 공간이고,

상단은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관심당은 참배의 공간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보물 제 291호인 내소사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내소사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전란에 참화를 당하였으나 조선 인조11년(1633)에  청민대사가

중창하면서 세운 건물이다

내소사 대웅보전 조성에 관련하여 청민선사와 관련된  두가지의 설화가 전해져 오는데 하나는 대웅보전

 건축에 관한 대목수이야기이고 하나는 대웅보전 불화에 관련된 관음조이야기이다.


청민선사가 하루는 시자승을 불러 “일주문 밖에 나가보면 누가 올터이니 그분의 짐을 받아 오도록 하여“

라는 명을 받고 일주문앞에 나가보니 정말 웬사람이 들어오고 있어 짐을 받아들고 내소사로 들어오니 이사람이

 대웅보전을 지을 대목수였다.

대목수가 대웅보전 앞에서  1년이 가고 2년이 지나도록 묵언수행 하는 것처럼 한마디 말도 없이 목침만을

 산더미 같이 깍기만 하는 것을 본 시장승은 수시로 “대웅전은 언제 지을려고 목침만 깍는거냐”고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자 화가 나서 목수를 골려주려고 만들고 있던 목침을 하나 숨기고 말았다.

마침내 3년 세월이 흘러 목침 깍기를 마친 목수가 목침수를 세어 보더니 청민선사를 찾아와  “스님 저이 경계가

 부족하여 목침이 하나 부족한가 봅니다”라고 하자 청민선사가 “목침수가 그대의 경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니

 그걸로 법당을 짓게” 하는 말에 대목수는 기둥으 세우고 중방을 걸고 순식간에 법당을 완성하였다.

 그러나 수행이 부족한 시자승의 실수로 인해 지금도 법당 오른쪽에 포가 부족한채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에는 불화가 3점 있는데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석가불좌상 뒤 벽에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이 벽화는 황금빛 날개를 가진

 관음조가 그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대목수가 대웅보전을 다 지을 지음 찾아온 단청사(탱화장)이 겉을 다 칠하고 보전 안으로 들어가면서

 “제가 불화를 끝내고 나올 때까지는 100일동안 누구도 절대로 들여다보면 안됩니다.” 문고리를 안으로

 단단히 걸어 잠그었다.

 그런데 99일째 되는날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 너무도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한 사미승이 문틈사이로 들여다

보니 탱화장은 안 보이고 오색영롱한 작은새 한 마리가  부리에 문 붓으로 제몸에서 나는 물감을 묻혀 곱게

곱게 단청해 나가고 있다가 들여다보는 인기척에 놀라고 어디선가 산울림 같은 호랑이 소리가 들리면서

 새가 날아가 버렸다.
내소사 대웅보전 내벽 서쪽의 맨 위쯤 앉아 참선하고 있는 선사 옆 아무것도 칠하지 못하고 너무나 휑하니

 비어둔 미완성의 공백이 바로 끝내지 못한 그 자리이다.

법당 내부사진을 찍을려고 했으나 내소사를 관리하고 있는 분들의 명을 받은 법당보살님의 제지로 찍지

 못했으니 시간이 나시는 분들은 내소사를 찾아서 보시기 바랍니다.

조선 중기 이후의 장식화 경향을 볼 수 있는 건물로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짠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앞쪽 문에 달린 문살은 꽃무늬로 조각하여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하는데 특히 연꽃과 국화꽃 등

 각기 다른 꽃살무늬를 조각한 전면의 창호는 정교한 공예품이다.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면 벽체 윗부분에 있는 부재 끝을 연꽃 봉오리 모양으로 장식하였고 보머리에는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나타내 건물의 화사함을 더해 준다.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짜맞추어 지붕 윗부분을

 가리고 있는 우물천장으로 꾸며져 있다.

보물 제277호인 내소사동종은 고려 시대 동종의 양식을 잘 보여주는  장엄하고 미려한 동종으로 높이 103㎝, 입지름

 67㎝ 무게 700근의 범종이다.


동종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에는 덩굴무늬 띠를 둘렀고, 어깨부분에는 꽃무늬 장식을 하였다. 종의 어깨 밑에는 사각형의

 유곽이 4개 있고, 그 안에는 9개의 돌출된 유두가 있다.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는 연꽃으로 장식했고, 종의 몸통에는 구름 위에 삼존상이 새겨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활짝

 핀 연꽃 위에 앉아 있고, 좌·우 양쪽에 협시불이 서 있다. 종 정상부에는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과 큰 용머리를

 가진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가 있다.

고려 고종 9년(1222)에 내변산에 소재한 청림사 종으로 제작었으나, 청림사가 폐사된 후 오랫동안 매몰되었다가

 조선 철종 4년(1853) 내소사에 옮겨진 것으로 전형적인 고려 후기의 동종이다.
한국 종의 전통을 잘 계승한 종으로, 그 표현이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고려 후기 걸작으로 손꼽힌다.



[관련자료참조]


http://www.buan.go.kr/

http://www.naesosa.org/

http://www.seonunsa.org/

http://www.cha.go.kr/


[주변 맛집]

< 계화회관 >  부안이화자백합죽 - 대한명인 부안군 향토음식 1호

              전북부안군행안면신기리 211-2 (부안소방서앞) / 063-581-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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