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된 군위 팔공산 삼존석굴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09. 2. 11. 17:59

본문

728x90

경북 군위에 있는 삼존석굴을 찾은것은 2008년 11월8일 군위군에서 사과축제에 즈음하여

 여행블로거기자단의 일원으로 초청되어 이곳을 방문중이었을때였다.

대구에서 군위로 이어지는 55번 중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5번국도를 따라가다 칠곡군

 동면면에서 팔공산 왼쪽 산허리를 넘어가는 79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팔공산자락 고개를

 넘어서면 남천으로 흐르는 계곡너머 암반 중앙에 자리잡은 군위 삼존석굴이 보인다.  

경상북도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산15번지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국보  제109호

군위삼존석굴(軍威三尊石窟)은 통일신라 초기인 700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청되는 석굴사원

으로, 774년에 김대성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국보 제24호 경주석굴암석굴보다 연대가

앞선다.

 

절 뒤 절벽에 조성된 석굴은 지상에서 20m 높이에 위치하고, 굴 입구 높이는 4.25m, 굴속길이

는 4.3m, 바닥은 평면이고, 네모반듯한 형상으로 천장은 한가운데가 제일 높고 사방주위는

차차 낮아지는 하늘 형상안에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본존불인 아미타불과 좌우로 대세지보살, 관음보살이 있고 본존불의 결가부좌한 모습과 깍은 머리,

 얼굴모습은 풍만하며 거대하고 엄숙한 기품이 있다. 본존불은 2.18m, 왼쪽 보살상은 1.8m, 오른쪽

 보살상은 1.92m이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

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가 사라지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인데, 우리나라 불상에서 나타나는 최초의 예로써

의의가 크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

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삼존석굴이 있는 절은 신라 소지왕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데 신라에서

 불교가 공인된것이 이차돈의 순교한 527년(법흥왕14년)이후이니  핍박받던 시대에, 팔공산

깊은 산속에 숨어서 오직 불심(佛心)으로만 수도하던 곳이었을 것이다.

삼존석굴이 있는 절벽을 끼고 돌아 왼쪽으로 난길로 올라가다보면 삼성각이 나온다. 핍박받던

 불교가 국가종교로 공인받으면서 우리민족 전래의 민속신앙이 신흥종교인 불교와 융합하여

 절안에 민족고유의 신인 산신령과 일월성신(일광보상, 월광보살) 모시는 사당이 세워졌으니

 이역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이런 민속신상의 흔적을 알려주는 듯 삼존석굴 주변에 동전기도와 촛불기도가 아직도 이어지는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것을 볼수가 있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 조성의 모태가 된 군위삼존석굴은 삼국시대 조각이 후기신라시대로 옮겨가

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도에서 전해진 불교가 고구려를 통해 신라불교가 팔공산 자락

에서 꽃피워지고 신라왕도(王都) 경주로 전해져가는 과정을 살필수 있는 중요한 문화 유산이다.

이러한 점에서 군위삼존석굴은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258호 (군위군)로 지정된  군위삼존석굴석조비로자나불좌상(軍威三尊石窟石造

毘盧遮那佛坐像)은 삼존석굴이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데 현재 대좌(臺座)와 광배

(光背)는 소실되었으며, 9세기경의 불상형식을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에 있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은

 펑퍼짐하게 표현하였다. 볼에 살이 올라 풍만한 얼굴은 길게 늘어진 두 귀와 함께 양감을 느끼게

 한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 입고 있는데 앞가슴을 넓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모습으로 일반적인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손모양이다.


제241호 (군위군)로 지정된 군위삼존석굴모전석탑(軍威三尊石窟模塼石塔)은 1층 기단(基壇)

위에 1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특이한 형태로, 전탑(塼塔:흙벽돌로 쌓아만든 탑)을 모방하여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이다.

기단은 네 면마다 모서리에 2기, 그리고 그 사이에 3기 등 5기씩의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의 몸돌은 20여 단의 일정치 않은 돌을 포개어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전탑에서와 같이

아래·윗면이 층단을 이루고 있는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윗면에도 다시 여러 단의

 층단을 쌓아 점차 줄어들게 하였다. 지붕돌 한가운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과 보주

(寶珠:연꽃봉오리 모양의 장식)가 놓여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탑신을 다시 쌓으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으나 비교적 탑의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어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자료]

http://www.cha.go.kr/

http://www.gunwi.gyeongbuk.kr/



[군위 맛집]

<고향산천> 생삼겹살, 쇠고기버섯전골

           군위군 군위읍 정리 1120  / 054-383-123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