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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경상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8. 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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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여행] 한산대첩의 쾌거를 이룩한 통제영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서

이순신장군이 1592년(선조25년) 거북선을 선봉으로 학익진 진법을 펼쳐 왜선 73척과 왜병 9천명 무찌른 한산대첩의 중심지였던 제승당이 있는 한산도를 찾았다. 

한산대첩은 매우 불리하였던 전쟁의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해전으로, 육지에서의 행주성대첩·진주성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로 꼽히는 해전역사상 최고의 승전으로 일컬어지는 대첩이다. 

통영항 여객선 터미널에서 카훼리호에 차를 실고 20여 분쯤 바다를 헤쳐가면 한 덩이의 돌로 조각한 것으로 유명한 제승당 입구의 거북등대가 지키고 선 한려수도 관광 1번지 한산도 제승당(사적 제113호)에 도착한다. 

 

 

원래 제승당은 임진왜란 중 충무공이 부하들과 함께 작전계획을 세우고 일을 보던 ‘운주당’이란 건물 자리에 영조 때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제승’은 손무병법(孫武兵法)의 수인지이제류 병인적이제승(水因地而制流 兵因敵而制勝 “물이 지형의 생긴 원인에 의해 제어가 되듯이 군대또한 적의 상항에 따라 승리의 방법을 통제하여 변화시켜야 하다.”)에서 연유된 이름이다.

 

1592년 전라좌수사(본영은 여수)의 직책을 맡은 충무공이 전략적인 수군진영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1593년 7월 이곳 한산도로 수군진영을 옮겨 삼도수군을 지휘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통제영이 한산도 제승당 자리이다

 

통영 앞바다에 많은 섬들에 둘러쌓여 있는 한산도는 거울같이 잔잔한 바다가 호수처럼 보일 정도로 천혜의 요새로 흠 잡을데 없는 곳임을 한산도 선착장에 도착해서 제승당으로 가는 길에 절로 느낄수 있었다.

 

소나무, 팔손이나무를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나무가 25만 그루 이상 울창하게 들어서 있는 제승당의 경역은 잔잔한 한산 앞바다와 어울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매표소가 있는 한산문을 지나 관리사무소를 거쳐 우물 앞에 자리잡은 대첩문을 들어서서 언덕길을 올라서 계단을 걸어올라 충무문을 통과하면 소나무 아래 자리잡은 제승당 건물이 역사의 한 자락을 간직한 채 찾는 이들을 묵묵히 맞이한다.

 

제승당 내벽면에는 한산대첩도 우국충정도, 사천해전도, 노량해전도, 진중생활도 등의 기록화가 당시의 모습을 재현시켜 주고 있다.

 

경역 내에는 본 건물인 제승당을 비롯 충무공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충무사, 활터인 한산정 등 건물과 비각이 즐비하다.

 

그리고 제승당 오른편에는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 자주 올라 왜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우국충정의 시를 읊던 수루가 자리잡고 있다.

 

수루 안에는 이순신장군이 지었는다는 난중일기에 전해지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큰칼 옆에 차고

깊을 시름 하던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라는 현판이 걸려있어 장군의 심사를 대변해주고 있는 듯 하다.

 

제승당 건너편 언덕에는 거북선 모양을 본뜬 충무공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정면 제목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고 뒷면 글은 노산 이은상이 짓고 글씨는 우석 김봉근이 쓴 20M 높이의 한산대첩기념비가 우뚝 서있다.

 

한산도에는 임진란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여 지명까지 여기에서 유래된 곳이 많다.

왜적의 패잔병이 도망갈 수로를 뚫기 위해 개미처럼 붙어 있었던 곳이라 해서 개미목, 군함을 만들던 비추리, 왜적의 시체를 파묻은 곳이라 해서 매왜치, 군수품 하치장이 있었던 멜개, 군함을 가장하여 의병전술을 쓰던 돛단여, 왜적의 머리를 수 없이 벤 곳 이라 하여 두억개, 왜적의 동정을 살피던 곳 이라 해서 망골, 군기를 제조하던 곳 이라 해서 야소, 왜적이 도망칠 길을 물었다 해서 문어개, 군복을 짓던 옷바위, 진을 친 곳 이라 해서 진두 군량 창고가 있었다 하여 창동, 연료를 조달하던 곳이라 해서 숯덩이 골, 질그릇을 만들던 독안바위 등등 이루 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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