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진 영천 은해사
팔공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은해사는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소나무와 작은 시내가 어울어져 시원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계곡에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그늘을 찾아 온 피서객들이 자리를 잡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소나무와 작은 내를 중심으로 은해사 주변에 안개가 끼고 구름이 피어 날 때면 그 광경이 은빛 바다가 물결치는 듯 하다고 해서 은해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신라의 진표율사는 "한 길 은색 세계가 마치 바다처럼 겹겹이 펼쳐져 있다.(一道銀色世界 如海重重)" 라고 표현한 바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 불, 보살, 나한 등이 중중무진으로 계신 것처럼 웅장한 모습이 마치 은빛 바다가 춤추는 극락정토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은해사이다
조선 31본산, 경북 5대 본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의 자리를 지키는 경북지방의 대표적 사찰이다. 그리고 교구 본사중 본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으로도 유명하다.
신라 41대 헌덕왕 1년(809년) 혜철국사가 해안평에 창건한 사찰이 해안사인데 이 해안사로부터 은해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존하는 암자만도 여덟 개가 있고 말사 숫자가 50여 개에 이르고 한국 불교의 강백들을 양성, 교육하는 "종립 은해사 승가대학원"이 있는 사찰이기도 하다.
천년고찰이라는 역사에 걸맞게 괘불탱(보물 제1270호), 대웅전 아미타 삼존불등 많은 소장 문화재들이 있으며 성보박물관을 건립하여 이들을 체계적으로 분류, 보존하고 있다.
대웅전과 보화루, 백흥암 등의 현판 글씨가 모두 조선시대 명필 추사 김정희의 친필이어서 유심히 살펴볼 만하다.
보물 제1270호로 지정된 은해사괘불탱은 조선 영조 26년 (1750)에 제작 된 볼화로 전체길이 11.56m, 폭 5.53m 이다
괘불화의 형식은 초기와는 달리 18세기 말기에 와서 급격이 단순화 되어 삼존양식에서 독존양식으로 변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은해사 괘불화 또한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품격은 실로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도의 단순화를 통하여 표현기법의 향상을 기하고 작품의 우수성을 나타내려 한 것은 말기적인 생략과 변화에 따른 특수형태라고 할 수 있다.
여원인(與願印)의 아미타불(阿彌陀佛)이 화면을 거의 꽉차게 여래입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래주위에 원형 두광(頭光)이 짙은 녹색을 하고 있고, 신광(身光)을 대신하여 영상회상을 나타내는 연꽃대좌 위에 피어오르는 연화 등의 회화적 표현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이는 지금까지 조사된 괘불화에서는 볼 수 없는 배경의 특색이라 하겠다.
조선조 영조와 정조시대에 은해사는 영파성규 대사가 주석하면서 화엄종지를 크게 드날리고 있었다. 이 때 추사는 경상감사로 부임한 그 생부 김노경 공을 따라서 경상도 일원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이 은해사 일대도 들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헌종 13년의 대 화재 뒤 헌종 15년에 마무리 지은 불사때 지어진 건물 중에서 대웅전, 보화루, 불광의 삼대 편액이 김정희의 글씨라서 마치 화엄루각과 같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뒤 고종 16년(1879)에 영천군수 이학래가 다시 쓴 '은해사 연혁변'에서는 '문액의 은해사와 불당의 대웅전, 정각의 보화루가 모두 추사 김시랑의 글씨이고 노전을 일로향각이라 했는데 역시 추사의 예서체이다'라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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