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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서울성곽스탬프투어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흥인지문(동대문)으로

서울시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0. 11. 2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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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서울성곽스탬프투어 와룡공원에서 혜화문 흥인지문(동대문)으로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 으로 서울특별시와 종로구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서울성곽은 사적 제10호로 조선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하고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쌓은 성곽이다.

 

오랜세월 현대화 산업화에 매진하던 서울시의 역동성의 그늘에 가려 산과 숲에 묻혀서 잊혀가던 이길이 1975년부터 종합적인 복원사업을 벌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러다가 서울성곽스탬프 투어가 시작되고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선데이 1박2일 팀이 당일치기 여행으로 종로 김종민이 북촌한옥마을을 이수근이 서울성곽길을 그리고 이승기가 이화마을 돌아보면서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삼청동 우체국 방향이나 언덕너머 명륜3가 성균관대학교에서 북쪽으로 길을 잡아 올라가다보면 사람들이 서울성곽길의 출발점으로 많이 애용하는 와룡공원이 나온다.

 

 

와룡공원에서 조금만 올라가다보면 700여년세월을 말없이 수도 서울을 지켜온 석성이 나오면서 어느새 조선시대로 훌쩍 뛰어든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우리나라 수도 서울에 이렇게 아름다운 석성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것이 그저 신기하고 그저 고마워서 나도 몰래 입가에 흐믓한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것을 느끼게 된다.

 

 

 

종로구 와룡공원에서 혜화문을 거쳐 낙산공원을 거쳐 흥인지문(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은 가벼운 산책로로 2.5km 거리에 약 2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아름다운 길이다.

 

 

서울성곽길을 걸으면서 석성밖으로 보이는 서울의 집들은 동화속에 나오는 집처럼 뭔가 신비한모습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또다른 서울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특히 와룡공원에서 흥인지문으로 넘어가는 길은 말바위에서 창의문으로 넘어가는 북악산길과는 달리 가고싶으면 언제든 갈수 있는 진출입이 자유로운 길이어서 더 친근하게 다가오는 성곽길이다.

 

 

두가지 아쉬운점이 있다면 첫번째 서울성곽길이 경신고등학교 담장으로 사용되는 등 혜화문(동소문)으로 넘어가는 일부구간이 유실되어 복잡한 도심길을 조금 걸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혜화문(동소문) 한성대입구역 지하도를 거쳐 낙산성곽길를 이어지는 천사길까지 이어지는 성곽길도 도심으로 나와서 복잡한 도시를 거쳐서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시대에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서울성곽은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동의 흥인지문 ·서의 돈의문 ·남의 숭례문 ·북의 숙정문이고,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 ·서남의 소덕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으로 고쳤는데, 흙으로 쌓은 부분을 모두 돌로 다시 쌓고 공격 ·방어 시설을 늘렸다. 숙종 30년(1704)에는 정사각형의 돌을 다듬어 벽면이 수직이 되게 쌓았는데 이는 축성기술이 근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으나,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다.

 

 

 

현재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남대문 ·동대문 ·동북문 ·홍예문만이 남아있다. 서울 성곽은 조선시대 성 쌓는 기술의 변화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며, 조상들이 나라를 지키려는 호국정신이 깃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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