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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 작업중 괭이 끝에 벽돌이 걸려 발견된 백제역사의 보고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12. 2.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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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수로 작업중 괭이 끝에 벽돌이 걸려 발견된 백제역사의 보고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공주시를 관통하는 금강을 끼고 축성된 공산성을 지나 공주시 서북쪽에 해발 130m의 나지막한 구릉인 송산에서 지명을 따서 송산리고분군으로 불리는 백제왕릉군은 동북쪽 1호~4호, 서쪽 5호와 6호 그리고 봉분이 파악되지 않은 지하의 고분군까지를 포함하여 사적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송산리 고분군은 일제시대인 1927년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는데 1~5호분은 한성시대부터 내려온 백제식 무덤양식인 자연활석으로 동방을 쌓은 횡혈식 석실분으로 조사되었고 6호분은 벽돌을 쌓아 조성한 전축분으로 벽면에 진흙과 호분을 바른위에 그려진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와 해와 달이 그려진 벽화가 발견되어 송산리 벽화고분이라고 명명되었다.

 

1971년 7월 5일 송산리고분군 6호분에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5호분과 6호분사이에 배수로 공사를 하던 도중 한인부의 괭이질에 벽돌이 걸리면서 우연하게 무령왕릉이 발견되어 그동안 비밀의 장막에 숨어있던 백제역사가 그 존재를 드러내면서 백제 고분 문화와 백제사 연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것은 무령왕릉이 발견되고 이틀만에 이루어진 7월 8일의 발굴이 폭우가 쏟아져 내려 다음날로 미뤄졌고 7월 9일 반나절만에 무덤을 파고 들어가 벽돌의 맨 윗줄을 걷어내고 석수를 발견하고 지석이 발견되면서 흥분한 발굴자들이 미처 현장을 통제하지 못하고 언론에 공개되면서 망가지고 하루 이틀만에 초스피드로 마무리 되면서 철저한 분석과 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뒤에 실체를 드러낸 무령왕릉은 6호분과 같이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전축분(벽돌무덤)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묘실(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고, 남북길이 4.2m, 동서너비 2.72m이며 높이는 2.93m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462년 태어나 사마 또는 융으로 불리던 백제 제25대 왕으로 등극한 무령왕과 3년뒤에 돌아가신 왕비를 합장한 무령왕릉 발굴 결과 왕과 왕비 모두 꽃 모양의 금·은제 장식으로 꾸민 옻칠된 목관에 안치되어 왕은 동쪽, 왕비는 서쪽에 모셔졌고 머리방향은 입구 쪽인 남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무령왕릉 부장품으로 왕의 것으로 금제 관장식, 심엽형 귀걸이, 뒤꽂이, 은제 허리띠, 금동 신발, 단룡문환두대도 등이 발견되었고 왕비는 금제 관장식과 귀걸이, 목걸이, 금·은제의 팔찌, 청동신수경 등 국보로 지정된 12건을 포함하여 모두 108종류의 2,906점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국보 제163호로 지정된 무령왕릉 지석은 유물 가운데 입구에서 2매가 발견되었는데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 넣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 왕과 왕비의 지석을 통해 이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과 그의 아내임을 알게 되었다.

 

전축분으로 조성된 6호분과 석수가 발견된 7호분인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다양한 중국 문물들을 통해 한성에서 공주로 밀려 내려온 백제가 무령왕때에는 고구려에 빼앗겼던 서해의 제해권을 되찾아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501년에 동성왕이 위사좌평인 백가를 비롯한 반대파의 모반으로 시해되고 그들의 추대로 왕으로 즉위하였으나 오히려 한솔 해명과 함께 502년 정월 가림성에 근거를 두고 저항하던 백가를 토벌하고 왕권을 확립하고 고구려와 가야지역에 세력을 확장하였다.

 

국보 제163호로 지정된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 2매는 왕과 왕비의 장례를 지낼 때 땅의 신에게 묘소로 쓸 땅을 사들인다는 문서를 작성하여 그것을 돌에 새겨넣은 삼국시대의 능에서 발견된 유일한 매지권으로 당시 백제인들의 매장풍습이 담겨져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기의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다.

 

국보 제162호로 지정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석수는 높이 30.8㎝, 길이 49㎝, 너비 22㎝ 크기로 악귀를 쫓아 죽은 사람을 지킨다는 진묘수의 일종인 부장물로 무덤내부 통로 중앙에서 밖을 향하여 놓여 있었다.

입은 뭉뚝하며 입술에 붉게 칠한 흔적이 있고, 머리 위에는 나뭇가지 형태의 철제 뿔이 붙어있고 날개를 표현 한 듯 몸통 좌우, 앞·뒤 다리에는 불꽃무늬가 조각되어 있다.

 

무령왕릉이 발굴된 후 25년간의 공개로 인해 남조류 등 미생물이 서식하고 빗물이 스며드는 등 원형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 1997년 11월 무령왕릉 등 송산리 고분군 보수공사 후 무령왕능과 5·6호분을 영구히 폐쇄하고 모형 전시관을 고분군 경내 지하에 만들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는데 현재는 2012년 4월까지 내부수리중에 있어 관람이 어렵다.

 

충청남도 공주 여행지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주소 | 충남 공주시 금성동 산5-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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