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한말 의병들의 순국사 홍주11경 홍주의사총 홍성 여행

충청도 여행지

by 마패여행 2020. 10. 26. 18:55

본문

728x90

9백의사총이라고 불렸던 홍주의사총은 대한제국 시기 1905년 일본과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홍성군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활동 중 민종식이 이끌던 의병들이 홍주성 전투를 벌였고 이때 희생된 수백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묘소이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각지에서 의병활동이 일어났는데, 홍성 지역에서는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들이 홍주성을 점령하고 고종에게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민종식 휘하의 1천여 명에 달하는 의병은 장날인 1906519일 홍주성을 포위 공격하였고 의병의 우세한 공격을 당해내지 못한 일본군과 관군은 북문을 통해 덕산 방면으로 도주하였고 의병은 홍주성을 점령한 후 총기와 탄약, 그리고 우편국에 있는 금품을 확보하였다.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초대통감으로 부임한 이토 히로부미가 주차군 사령관에게 군대 파견을 명령하였고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의 명령을 받은 보병 제60연대의 대대장 다나카 소좌는 보병 2개 중대와 기병 1/2 소대 그리고 전주수비대 1개 소대를 거느리고 530일 홍주성을 포위하기에 이르렀다.

 

 

일본군은 30일 밤 11시에 동문에서 약 500미터 지점의 숲속에 잠복하였다가 31일 새벽 2시 반 기마병 폭발반이 동문을 폭파시키고 일본 보병과 헌병대, 경찰대가 기관총을 쏘며 성문 안으로 진입하면서 폭격으로 조양문이 무너지고 의병 수백 명이 전사하면서 의병활동은 패퇴를 하게 되었다.

 

 

홍주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서문과 북문을 파괴하고 조양문 또한 파괴하려 하였으나 읍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보존되었고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모습을 찾게 되었다.

 

 

일본군은 민간인과 의병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많은 의병들의 시체가 홍성천과 남산 부근에 방치되었는데 광복 이후 의병들의 유해를 남산에 안치하고 병오항일기념비를 세우며 추모제를 지냈다.

 

 

홍주성 인근 구릉에서 1949년 또 다른 유골들이 발견되었고 이 유골들이 옛 홍주의병의 유해임을 확인하고 현 위치에 새로이 의사총을 조성하게 되었는데 사당인 창의사에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 구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명칭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홍주의사총은 의사총묘역, 창의사, 창의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말 홍주의병의 호국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유적으로, 매년 530일 순국의사 추모제를 올리고 있으며 2001817일 국가지정 사적431호로 지정되어 그의의를 되새기고 있다.

 

 

홍주의사총

충남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379

 

 

 

 

관련글 더보기